현장과 사람들[12호] 발전대안을 찾아가는 시민들의 찐한 행동, 네팔 시민현장감시단 ③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려면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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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대안을 찾아가는 시민들의 찐한 행동,
네팔 시민현장감시단

③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려면


[편집자 주] 발전대안 피다(구 ODA Watch)는 (재)바보의나눔의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지난 3년간 시민이 직접 개발협력을 감시하는 <시민현장감시단>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2015년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캄보디아, 2016년에는 아프리카 르완다, 2017년에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네팔을 활동국가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네팔 활동에서는 한국 시민들의 현장 활동 모습과 더불어 네팔 사람들의 고민과 진솔한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아 “네팔에 피다” 라는 제목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요. 작년 11월과 12월 두 차례 다큐 콘서트를 개최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영상에 대한 소감과 더불어 자유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움 13호에서는 영상 제작에 도전하게 된 계기와 두 차례의 다큐콘서트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① 두 손 모아, 나마스떼(Namaste)! [클릭]
② 진정한 발전은 “지금 이 순간” [클릭]

③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려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시민현장감시단이 찾은 현장의 이야기를 빼곡한 글과 몇 장의 사진으로 구성하던 기존 방식을 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파급력 있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해 보기로 했다. 영상은 같은 의도와 내용일지라도 다른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이 가진 친절함과 섬세함보다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면 더 큰 울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짧은 클립 영상 또는 유투브 채널 등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요즘의 분위기도 한 몫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일정과 넉넉하지 않은 예산, 우리의 기획의도와 편집방향을 잘 맞춰줄 촬영작가를 섭외하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골머리를 앓던 중 오랜시간 알고 지내던 지인을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개발NGO에서 수년간, 이후 1년간 네팔에서 NGO 봉사단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던 그는 우연치고는 절묘하게 그 즈음 촬영작가로 업을 전향한 상태였다.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그도다시금 네팔을 찬찬히 볼 기회이자 촬영 작가로서 좋은 경험의 기회가 될 것 같다며 흔쾌히 우리의 여정에 동행해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귀하게 시민현장감시단 다큐멘터리 “네팔에 피다”가 만들어졌다.
 

꼭 전하고 싶었던 그들의 속마음

영상은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의 복잡스런 전경과 네팔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첫 일정인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의 사전 미팅부터 사업현장 방문까지 감시단 일정에 따라 활동한 내용들을 순차적으로 구성했다. 영상 중간중간에는 각 사업장에서 만난 네팔 사람들의 고민과 의견을 인터뷰 형태로 담았다. 전체 활동과 촬영에 있어 인터뷰는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고, 영상을 구상할 때도 핵심 요소로 최대한 다루고자 했다. 현장을 다녀온 감시단의 증언보다도 해당 사업을 접한 네팔 사람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가진 무게와 힘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국제개발협력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여기에 현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어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많다. 협력대상국의 ‘발전’을 위한 사업임에도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이 앞선, 우리만의 언어로만 그 과정과 결과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들었었다. 감시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살펴본 수많은 평가보고서들 안에 마치 의무적으로 첨부된 현지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서 늘 궁금했다. “이 설문 결과가 현장의 진정한 목소리일까?” 하고 말이다. 한편으론 그 자료들이 우리만의 시선과 입장에 맞춰 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시민현장감시단의 활동 목표를 단순히 한국 원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만 두지 않고,한국이 지원했던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네팔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고 전하는데에 더 주력하고자 했다. 사업들이 정말 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을까? 삶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혹시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앞으로 더 보완할 점은 무엇일까? 등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네팔 사람들이 느끼고, 고민하는 지점을 알아가려 노력했고, 그 기록들을 “네팔에 피다”에 충실히 담으려 했다.


▲ 다큐멘터리 '네팔의 피다' 중 관련 실무자들의 인터뷰 장면(캡쳐본) ⓒ발전대안 피다



창작의 고통,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

작년 8월 중순부터 약 10일 간 진행된 감시단의 현장조사가 끝나고 이후 9월부터 본격적인 영상 편집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약 3주가 지나 한 시간 가량의 1차 가편집본이 만들어졌다.  1차본을 토대로 필요한 추가 인터뷰를 촬영하고, 자막과 나레이션 대본 구성, 녹음 등의 다양한 작업을 거쳤다. 다행히 현장조사 일정 중 통역사님과 함께 인터뷰 촬영분 전체를 다시보며 네팔어에서 한국어로 번역 작업을 미리 해 둔 덕분에 구성이 훨씬 수월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창작물을 제작한다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짧은 시간안에 다양한 주제와 활동을 핵심만 뽑아 구성해야 하다보니 전체 방향이나 구성, 내용별 수정사항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체감하기로는 기존 보고서 제작보다 10배는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게다가 영상에 대한 이해와 배경지식이 없다보니 많은 다큐멘터리와 다양한 르포 프로그램, NGO의 영상들을 참고해가며 나름의 공부를 해 나가야 했다. 그렇게 수 차례의 편집과 더불어 각고의 노력 끝에 35분짜리 “네팔에 피다” 영상이 완성되었다. 작가님과 함께 꼬박 10주 가량을 매달린 결과였다.
 

시민들의 힘을 확인한 “네팔에 피다”


그렇게 애써 만든 영상이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지고, 그 뜻이 전해져 또 다른 참여의 길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시민들이 이 영상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네팔에 피다” 영상을 알리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했다. 그 결과 텀블벅(tumblbug) 사이트를 통해 총 55명이 시민들이 “네팔에 피다” 다큐멘터리 다큐콘서트 개최와 추가 인쇄물 제작에 후원해 주었다. 70만원이었던 펀딩 목표액은 두 배가 넘는 1,490,000원이 모였고, 시민들의 참여에 힘입어 작년 11월 25일(토)과 12월 14일(목) 두 차례에 걸쳐 영상을 상영하고 이야기 나누는 다큐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1차 다큐콘서트에서 다큐멘터리 '네팔의 피다' 상영 ⓒ발전대안 피다


사실 다큐콘서트를 열기 전에는 참가자들에게 현장의 생생함과 더불어 네팔 시민들의 목소리와 우리의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네팔 사람들이 말하는 ‘발전’의 의미와 사업에 대한 진솔한 ‘생각’과 다양한 ‘제언’ 을 신선하고, 또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간 이 분야의 국내 영상들은 협력대상국을 배경으로 한 모금 방송이나 홍보성 위주로 제작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 현지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영상이 꽤 의미있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한 참가자는 더 많은 이들이 영상을 보고 생각을 나누었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컨텐츠를 활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무엇보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개발협력 현장을 시민들이 볼 수 있고, 다양한 제언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 시민들의 힘”을 보여줘 더 의미있었다는 소감도 있었다.  


 ‘발전’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고민하고 나누며


참가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도 유의미한 문답이 오갔다. 시민현장감시단의 운영(선발과정, 힘든점, 사업 대상 국가 및 사업 선택 기준 등)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한 점은 ‘감시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 였다. 특히, 3년간 시민현장감시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영우 단장에게 그 질문이 많았다. 국내에서 오랜시간 주거권 운동을 해온 유영우 단장은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라고 답했다. 이어 한국 사회가 엄청난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사람’이 아닌 ‘돈’만을 중시하는 삶을 낳고 있고, 협력대상국에도 그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전의 어려움은 잊은 채 협력대상국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서 우리의 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삶에 있어 ‘사람’을 중시하던 운동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지 등을 되돌아보고 곱씹어 보는 시간들이 자연스레 이어졌다고 답했다.

▲1차 다큐콘서트에서 질의응답중인 네팔 감시단원과 참가자들 ⓒ발전대안 피다


또 다른 참가자는 영상을 보며 민간단체(개발NGO 등)들의 홍보/모금 활동에 있어 자극적인 홍보에 대해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었다면 이는 인권에 기반한 모금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감시단에 참여한 송수니 활동가는 자극적인 홍보에 대해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전하며 정당성을 갖기 위한 행위는 요식일 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빈곤의 현실만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금/홍보물이 모금율이 더 좋다고 하더라도, 그런 기부문화를 변화시켜나가기 위해 단체들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 참가자는 발전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서 ‘국제개발협력이 발전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는 발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양한 측면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제개발협력이 어떤 측면에서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면도 있지만 피다는 ‘또 다른 발전’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공급자 중심의 원조를 넘어 협력대상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직접 듣고, 반영해나가는 방식으로 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협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려면

영상을 선보이고 나니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나 모든 일이 마치고 나면 그렇듯 여러 아쉬움도 남는다. 영상 제작이 처음이다보니 촬영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고려하지 못했다. 현장 전체 촬영과 회의 촬영, 각 그룹별 인터뷰 촬영까지 제한된 시간 내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화해야 했다. 네팔 사람들과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관계를 먼저 쌓아갔다면 더 진솔하고 깊은 이야기로 채웠을 듯 하다. 또, 이번에는 시민현장감시단의 전반적인 활동을 알리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영상을 제작했지만, 다음에는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큐콘서트에 현장에서 이번 영상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올해부터는 청소년이나 대학생, 교사 등 다양한 시민그룹을 대상으로 “네팔에 피다”를 상영하고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계획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피다 사무국에 연락을 부탁드린다(02-518-0705, pida1025@gmail.com).

감사하게도 올해까지 (재)바보의나눔의 지원을 받아 지난 3년간의 시민현장감시단 사업을 평가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2015년 사업대상국가였던 캄보디아를 다시 찾아 캄보디아 시민들과 함께 ‘대안적인 가치평가 기준’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국제사회에서 정한 기준들이 아닌 실제 시민들이 체험하고, 고민한 바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스스로 사업의 성과와 변화를 묻고, 기록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언어로 ‘발전’을 재정의하고 제도와 관습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우리의 걸음이 진정한 변화의 길이 되길 희망하며.



기사 입력 일자: 2018-01-31

작성: 이재원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 tony5j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