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10호] 로힝자(Rohingya)도 사람이다. 사람... -인종청소 중단하고, 인도적 지원해야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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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자(Rohingya)도 사람이다. 사람...
-인종청소 중단하고, 인도적 지원해야


▲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는 로힝자 난민들 © Abul Kalam


믿을 수 없는 증언은 계속되었다.


“11월 14일 경, 군인 50여명이 무장하고 마을에 들어왔어요.
제 남편, 아들, 시아버지, 시형제들 모두 산채로 집이 불태워질 때 사망했어요. ...”
 
“녹색 헬리콥터 2대가 상공에서 자동화기를 쏘아 사람들이 죽었어요. ...
저도 헬리콥터에서 쏜 총알에 어깨와 등을 맞았어요.”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은 남편을 체포하고 심각하게 구타했어요. 30분 가량.
남편은 피를 토하고 온몸이 피로 범벅되었어요. 그리고 남편을 어디론가 데려갔죠.
그 뒤 남편을 볼 수 없었어요.”
 
“어느 군인이 두 손으로 2살난 아들을 거꾸로 들어 땅에 내려찍어 죽였어요.”
 
“15명의 군인들이 여동생과 저를 한 방에 가두었어요.
여동생의 팔다리를 잡아 못 움직이게 하고 돌아가며 여동생을 강간했어요.
제가 보는 앞에서 동생을 죽였어요. 저도 당했어요. 두번이요. ...
그 날 이후 다시 돌아온 군인들은 마을여성들을 집단 강간했어요.
제가 본 것만 해도 8~10명이 당했어요.
어떤 군인들은 4명을 작은 오두막에 끌고가더니 2일 동안 강간했어요.
나중에 여성들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죠.”



지난 2월,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ADI)
[1]가 만난 로힝자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2016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미얀마 군대가 무장세력에 대한 토벌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군대는 이들을 총기, 검 등으로 살해하거나 방화, 강간, 구타로 죽였다. 집단 강간과 아동 살해는 물론 자의적 구금과 강제실종도 빈번히 발생했다. 또 민간인 가옥을 방화하고 모든 재산을 약탈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를 인종청소 또는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위협을 피해 작년 10월부터5개월간 7만여명이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었다. 또 지난달 25일부터는 3주간 40만명이 월경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와 접경지역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는 이들을 수용할 임시캠프도 부족해 난민들은 길거리에 나앉아 있다. 이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단체도 없고, 인도주의 지원의 손길도 미미하다.
 
어느 생존자는 자신에게 매질을 하던 군인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너희 나라로 가라.” “너는 이나라 국민이 아닌데 왜 아직도 있나.” 미얀마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건만 내 나라가 아니라니. 도대체 자신은 누구란 말인가. 갈 곳은 어디인가. 되뇌이며 자문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너의 알라는 어디있어.” 기도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 로힝자 학살을 규탄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 ADI



로힝자인가, 벵갈리인가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로힝자라고 부른다. 로힝자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이자 무슬림으로 그 숫자는 130만명에 이르고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에 주로 거주한다. 미얀마 군부정권은 1982년 시민권법을 제정하면서 시민권을 부여한 135개 민족에서 로힝자를 제외했다. 현 정부도 토착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군부와 미얀마 시민들 대부분은 이들이 영국 식민지배 당시 농장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당시 인도) 벵골만 인근에서 대량 유입된 이주노동자였는데, 독립 후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라카인주에 정착한 불법이주자라고 간주한다. 그런 의미로 차별적 시선을 담아 이들을 ‘벵갈리’로 부른다. 그러나 로힝자는 영국 식민지배 훨씬 이전부터 벵골만 인근에서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며 살아온 토착민족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지금의 국경이 획정되면서 이주노동자로 살던 일부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힝자 박해의 역사는 이보다 더 참혹할 수 없다.
 

로힝자는 오랜 박해를 받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하자 미얀마에는 소수민족을 통합했던 구심점이 사라졌다. 독립을 보장받지 못한 소수민족들은 스스로 무장하고 정부군과 싸웠는데, 로힝자도 그 중 하나였다. 소수민족 무장세력에 대한 토벌작전의 오랜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8년 미얀마 군부는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이주자를 색출한다면서 나가 민(Naga Min) 작전을 벌여 로힝자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또 1991년에는 무슬림 반군을 토벌한다며 25만명을 방글라데시로 몰아냈다.
 
2012년에는 무슬림이 불교도 여성을 강간했다는 사건(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이 빌미가 되어 라카인 불교도 극단주의자들이 로힝자 공동체에 보복을 가했다. 최소 200여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이 격리되었다. 대부분 로힝자였다. 이 사건으로 불교도 극단주의자 세력은 반무슬림 혐오발언을 주도하고 반무슬림 정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로힝자에 대한 억압은 점차 사회 구조화되었다. 국적은 부여되지 않았고, 이동의 자유는 제한되었다. 이들은 인근지역을 방문할 때에도 관청의 여행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결혼도 ‘사실상’ 관청의 허가가 필요한다. 일자리를 구하는데 제약이 있고 공직에 진출할 수도 없다. 2015년 총선에서는 그 동안 부여되던 투표권마저 박탈되었다. 최근까지 수천 명이 보트피플이 되어 인근해역을 떠돌았다.
 
로힝자는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 되었다. 시쳇말로 ‘말려서 죽이는’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절박한 심정이 모여 무장세력으로 발전했다. 단검과 죽창으로 무장한 ‘나름의’ 무장조직으로. 이름은 아라칸로힝자구원군(ARSA). 로힝자의 박해를 끝내고자 하는 최후의 항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2016년 10월 경찰초소 공격을 시작으로 11월에는 작전중인 군차량을 습격했고, 2017년 8월 25일, 경찰서 30여곳을 습격하였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의 대응은 최악의 범죄에 해당한다.
 
미얀마 군부는 이 습격을 이슬람 테러공격으로 규정하고, 외국 무슬림 테러조직과 연계되었다고 주장한다. 해당 지역을 군사작전지역으로 선포해 완전히 봉쇄했고, 언론의 자유로운 접근을 통제했다. 인도주의 지원을 중단시켰고, 통행금지를 확대했다. 5인 이상의 모임도 금지되었다. 또 미얀마 정부는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방화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한 짓”이며 로힝자는 “불결하여” 강간할 수 없다는 망언도 일삼았다. 따라서 인권침해의 의혹은 사실무근이며 관련 증거는 조작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는 그 구성과 운영부터 문제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다.
 
특히 2015년 총선에 승리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권은 무기력한 모습이다. 60년간 국가를 통치해 온 군부의 막강한 영향력은 여전하고, 2008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아웅산 수치는 군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부는 경찰, 국방, 국경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언제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 또 군부는 의회 의석의 25%를 할당받아 헌법 개정을 저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2년도 채 안된 민주정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계산 때문에 침묵하거나 편승하는 것은 비판받을 만하다. 아웅산 수치의 노벨평화상이 회수되어야 한다는 국제적 서명이 활발한 이유이다.
 


미얀마는 왜 로힝자 학살에 침묵하나
 
그렇다면 왜 로힝자에게 이런 학살이 발생하는가. 소수민족을 포함한 미얀마의 절대 다수는 왜 이 문제에 침묵하거나 군부와 정부를 지지하는가.
 
미얀마 군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로힝자를 처치하고 수치 정부의 국내외 신뢰를 훼손해 차기 총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있다. 또 라카인주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고 경제특구가 조성되어 해외직접투자가 활성화된 지역으로 대형 경제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다. 이를 위해 로힝자들의 토지를 경제적 보상 없이 약탈한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군부의 지지를 등에 업은 불교 극단주의집단인 마바따(MaBaTha)는 무슬림을 인정하면 곧 미얀마 전역이 무슬림화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확산시켜 왔다. 결국, 로힝자는 불법체류자라는 인식, 식민지배 시기부터 형성된 악감정, 그리고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포된 반무슬림 편견과 혐오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진 상황에서 군부와 정부가 최근의 공격을 미얀마 영토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테러로 간주하면서 전국민적 지지가 형성되었다.
 


로힝자 난민의 존엄성은 위기에 처했다.
 
현재 방글라데시로 넘어 온 로힝자 난민은 약 40만명이다. 이 중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는 두 캠프에 거주하는 3만 5천명 외에는 대부분이 임시캠프에 거주한다. 그러나 최근 도착한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는 없어 여기저기에 무허가 캠프가 생겨나고 있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도착한 로힝자 난민들은 인근에서 일용직 노동을 통해 또는 주변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역공동체가 수용가능한 수준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난민들이 그야말로 길거리에 노숙하고 있다. 또 보건위생, 안전, 교육, 트라우마 치유 등 어떠한 것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는 내일의 생존조차도 불투명하다. 군부의 총칼에서 벗어났다는 것 외에는.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임시난민촌의 전경 © MD Shafi



재지말자. 지금 행동하자.
 
우리는 로힝자 난민과 무엇을 연대하고 함께 할 것인가. 몇몇 한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얀마 대사관에 항의하고 국내에 사안을 알리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또 인도주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인도적지원 단체가 없다. “국가간 관계에서 직접 나서기에 민감한 사안”이고 “이들은 기독교도 불교도 아니”기 때문인가. 인도주의 원칙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먼저 고려하며 주저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로힝자는 오늘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우리의 인권과 인도주의 지원 역량은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제2의 제주 4.3을, 제2의 80년 광주를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재지 말자. 인도주의 원칙만 보고 지금 행동하자.



기사 입력 일자: 2017-09-25

작성: 김기남 아디(ADI) 활동가 / asparte1997@gmail.com


[1] 아시아 분쟁지역의 피해자와 현장 활동가를 지원하는 단체로, 로힝자 인권실태보고서를 발표하고 피해 생존자를 대리해 유엔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로힝자 인권탄압 문제에 앞장서 활동하고 있다(http://www.adian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