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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12호] 막장에 갇힌 로힝야 난민들, 그리고 도움의 법칙

2018-03-02
조회수 1140


막장에 갇힌 로힝야 난민들,
그리고 도움의 법칙


▲ 방글라데시의 발랑칼리 지역에 끝없이 펼쳐진 로힝야 난민 캠프 ⓒ개척자들



“3일 동안 배를 타면서 비바람을 맞으며 방글라데시로 넘어왔다”, “배를 타고 오는데 배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다. 우리 가족도 아내가 임신중이었는데 다행히 배에서 내리고 1시간 후에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 동료가 우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생각을 좀 해 보세요. 혹시 땅에 내리지 않고 배를 3일 동안 타본 적이 있는가, 밤이 되면 빛 하나 없는 그 어두운 바닷가에 있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생명이 태어나야만 하는 이 상황이 당신은 상상이 됩니까?”

수많은 난민들이 극적으로 자유를 찾아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땅은 자유의 땅이 아닌 거대한 집단 수용소였다.

2017년 말 쿠트팔롱의 로힝야 난민 캠프에 들어서는 순간 끝없이 펼쳐진 검은 비닐 천막집들의 행렬에 탄식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고향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로힝야 난민촌이 다른 난민촌과 다른 점은 이곳이 난민촌이라기 보다 집단 수용소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통 난민촌은 자연발생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에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로힝야 난민촌은 지역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하고, 수용소처럼 대략 100가정이 한 블록이 되어 a,b,c,b…순으로 나뉘어져 군인에 의해 감시, 통제되고 있었다. 난민들은 아직도 배를 타고 넘어오고 있지만 난민촌 한 켠에는 이미 25년 전에 들어와서도 아직 정착할 집을 짓지 못한 사람들이 비닐 천막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도로에는 군인과 경찰들이 허가증 없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로힝햐족을 막고 있었다. 로힝야 말과는 다른 벵갈어 숫자를 말해보라고 다그치는 군인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거칠고 무례했다. 난민촌에서 만나는 많은 청년들은 난민촌에서 태어나서 난민촌에서 자라났다. 교육도 취업의 기회도 없이 갇힌 채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가고 있다기 보다는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내게는 더 실감이 났다. 나치의 수용소는 가스실에서 서둘러 생명을 빼앗아갔지만 이들은 동물 사육장 같은 난민촌 안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 나야빠라 난민촌에서 만난 청년들. 모두가 난민촌 안에서 태어나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척자들


도움의 법칙
 
개척자들은 원래 분쟁지역을 찾아가 평화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인류가 겪는 거대 재앙에 대해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심정으로 참여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긴급구호 활동에 참여했었고, 2006년 파키스탄 대지진과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3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에도 구호팀이 참여했었다. 우리들은 지난 구호활동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구호의 원칙을 갖게 되었고, 현재 로힝야 난민촌에서도 이 원칙에 따라 일하고 있다. 첫째는 난민 캠프에서 난민들과 함께 먹고 함께 살면서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난민 캠프에서 난민과 함께 살면 더 잘 볼 수 있다. 로힝야 난민들을 돕는 국제구호단체 직원들은 대부분 캠프에서 한 두시간 떨어진 콕스바자르라는 도시의 호텔에서 지내면서 전용 짚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그러니 로힝야 난민촌의 천막이 낮에는 얼마나 뜨겁고 더운지, 밥하는 연기로 천막 안이 얼마나 매캐하고 어지러운지, 또 이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가 방글라데시 군경들에게 얼마나 무례하게 검문을 당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도움을 받는 이들과 무엇보다 먼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움을 주는 시혜자가 되기 전에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들과 함께 기꺼이 먹고 함께 자기도 하며 그들처럼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 그 열린 마음만이 진정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릇과도 같다. 닫힌 마음에 쏟아 붇는 도움은 뚜껑이 닫힌 독에 물을 붇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도 남지 않는 도움이 되고 만다.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 난민들 속에서도 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고아와 과부와 장애인들이 보이게 된다. 이들을 집중적으로 돕는 것이 개척자들의 구호 활동의 두 번째 과제다.


▲ 실명한 로힝자 여인의 집을 방문하여 자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개척자들


도움을 주는 것은 때로 분란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과 그 도움에서 배제되는 사람 간의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장애인, 고아, 과부와 같은 현저한 약자들을 돕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이 차별당하고 있다고 시샘을 하거나 분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칭송하고 스스로 도우려 든다. 이것이 개척자들이 적은 재원으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구호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약자들의 필요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맞춤형으로 지원할 수 밖에 없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이나 친지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온다. 난민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평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지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지 청년들의 마음을 얻어서 이들이 난민 문제를 스스로 돕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일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개척자들은 2004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쓰나미가 났을 때에도 난민들과 함께 살면서 난민들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과 10년이 넘게 공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해 온 일들을 청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했다. 그에 감동한 현지 청년들이 함께 연대하였다. 이 청년들은 현재 자신들이 스스로 주도하는 자원봉사단체 3R(자원봉사자의 집)을 만들어 아체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재난 피해자들을 돕고 아체의 벽지에 평화 도서관을 세우는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 2004년 반다 아체에서 쓰나미로 부모를 잃고 난민이 되었던 프레자(사진 중앙)라는 

한 어린 아이가 지금은 아체 벽지의 평화 도서관 건립과 운영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개척자들


세 번째는 도움을 주기 보다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난민들에게 도움을 받으라니 벼룩의 간을 빼먹지 어떻게 재난 피해지역의 주민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민들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그들이 잃은 것도 많지만 아직 가지고 있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부분 시간이 많고, 사용하지 못하고 쉬고 있는 노동력이 많다. 어떤 가족은 식량이 부족하지만 어떤 가족은 쌀이나 라면 등이 남아돌기도 한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원조물품을 처리하지 못해 고민하는 무슬림 가족들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들에게서 남아도는 것들을 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매일 같이 구호단체 직원들에게 구걸하듯이 무언가를 달라고 하면서 한없이 낮아진 그들의 자존심이 도와주는 사람의 자부심으로 바뀌도록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밖에서 돕는 도움으로는 난민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그들 안에 있는 잠재적 자구력을 길어올리기 위한 마중물일 뿐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진짜 힘은 사랑을 느낄 때 생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되고, 무너진 삶을 다시 복원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도움 중에 최대의 도움은 사랑이다.

지금 당장 로힝야 난민들에게는 식량과 의약품과 살 집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런 필요가 채워진다 하더라도 방글라데시 난민촌은 그들이 영구적으로 정착할 곳이 못 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장 안에 갇혀 있는 로힝야 난민들의 희망은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 자신의 집과 땅을 되찾고 미얀마 시민으로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도 쫓아내는 판국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그러나 로힝야 난민들을 돕는 일은 이 멀고 험한 여정을 동행하는 것이다.


▲ 로힝야 난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돗자리학교 ⓒ개척자들


개척자들은 지금 로힝야 난민촌에서 아이들을 위한 돗자리 학교를 열고 있다.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열린 학교다. 우리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부모들을 만나고, 특별히 장애인들과 고아와 과부와 노약자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가운데 로힝야의 청년들과 사귀면서 이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우리는 이런 청년들이 미얀마 시민권과 자기 부모와 가족들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지금 그 첫 삽을 뜨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로힝야 난민촌에서도 자기 종족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1-31

작성: 송강호, 사단법인 개척자들 활동가 / wcf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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