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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12호] 아래로 가는 여행 ④ 마을을 다시 생각하다

2018-03-02
조회수 1183


아래로 가는 여행 

④ 마을을 다시 생각하다


[편집자 주] 발전대안 피다의 전신인 ODA Watch의 실행위원이었던 탐디(이선재)는 5년째 라오스에서 청년들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13~4년 OWL을 통해 '라오 이야기'를 연재해 라오스의 사람과 개발에 대해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피움 9호부터 라오 이야기 이후 사는 '힘'을 찾으러 떠난 긴 여행길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① 라오를 짝사랑한 남자 (클릭)
② 구름에 달 가듯 (클릭)

③ 일상을 밀고 가는 힘 (클릭)

④ 마을을 다시 생각하다


중국을 석 달 걸으며 아침마다 시장에서 푸성귀 파는 노인들을 지켜봤다. 거기에 ‘일상을 밀고 가는 힘’이 있었다. 또 다른 일상을 찾기 위해 긴 여행으로 북아프리카와 남미에 가려 했다. 라오에 돌아와 마음을 바꿨다. 두루 세상을 본다고 삶을 깊숙이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옆으로 가는 여행, 넓은 세상을 보는 길이 아니라 ‘아래로 가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나케마을에 들어왔다. 어느덧 3년이 돼 간다. 여느 여행이 그렇듯 이 길도 만만치 않다. 낯선 것에 익숙해야 하고 다른 것을 끄덕거려야 한다. 불편은 이제 일상이 됐다. 옆으로 가는 여행과 다른 점도 많다. 매번 짐을 꾸리는 번거로움은 없지만 떠나고 싶다고 홀연히 갈 수 없다.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고 눈인사라도 해야 한다. 가끔 모르는 얼굴이 불쑥 나타난다. ‘어라, 이 사람도 우리 마을 사람인가?’ 사람들을 안다는 건 그만큼 나눌 게 많다는 거다. 나에게 베푸는 인정도 깊어지고, 내가 마음을 쓰는 일도, 언짢은 경우도 많아진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만나면 많이 속상하다.


이 여행은 숲을 헤쳐 가는 느낌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제대로 가고 있나? 혹시 다른 사람이 뒤를 따르면 오솔길이 되고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을 테지.’ 누구나 ‘다른’ 길을 가게 마련이다. 마을 주민과 같이 가는 낯선 여행이 좋다.
 


나는 마을에 산다.


나는 산속 마을에 산다. 작은 강이 흐르고 그 주위로 논밭이 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여기는 마을공동체가 아니라 ‘그냥’ 마을이다. 뜻과 의지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모인 자연부락이다. 세 민족, 백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산다.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나는 여기가 참 좋다. 자연이 아름답고 사방이 조용하다. 사람들이 순박하고 친절하다.
 
나는 이 마을에 들어와 살려고 청소년을 돕겠다는 핑계를 만들었다. 청소년센터를 짓고 아이들과 공부하고 뛰어놀며 마을에 조금씩 발을 집어넣고 있다. 올해는 수익사업도 좀 벌일 생각이다. 청년들이 일해서 돈 벌고, 주민들에게 도움 될 퇴비공장과 사료공장을 지을까 한다. 지역 활동가에게는 도시빈민촌보다 농촌이 살기 수월하다. 자연이 있고 먹을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도시는 폐쇄적인 데 비해 마을은 열린 공간이고 대문도 없어 사람 만나기도 수월하다. 외부의 영향이 적어 잘 뭉치고 서로 돕는다.
 
여기에 살며 마을을 다시 생각한다. 마을은 무엇일까? 마을공동체는? 마을과 공동체는 어떻게 다를까? 마을 하면 흔히 시골을 떠올리는데 도시에도 마을이 있나? 서울시에서 마을 살리기 사업을 하는 걸 보면 마을이 있나 보다. 아니 마을이 없는데 새로 만드는 건가? 도시에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도시 마을과 시골 마을은 어떻게 다를까?
 
국어사전에는 마을을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 동리. 촌락(村落).’이라 한다. 사전의 해석 말고 어떻게 마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마을에 산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을에는 무엇이 있나?
 


우리 마을에는 oo가 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아침이 있다. 시계가 가리키는 아침이 아니라 날이 밝는 걸 말한다. 마을은 해가 뜨고 지는 길을 따라 산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으면 일어난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맞춰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매일, 다른 아침을 맞는다.
 
소리가 있다. 수탉이 힘차게 울며 새벽을 연다. 새들이 지저귀며 화답해 아침을 맞는다. 물 긷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불 때는 연기가 사람의 아침을 알린다. 골목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물들도 분주하다. 소, 개, 돼지, 닭들이 모이를 찾느라, 짝을 쫓느라 제각기 내닫는다. 소리하면 무엇보다 아기 울음소리가 제일 우렁차다. 배가 고픈가? 어디 아픈가? 왜 저렇게 힘차게 울어 젖힐까?
 
계절이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따른다. 계절에 맞춰 씨를 뿌리고 거둔다. 건기에 애써 물을 끌어다 농사짓지 않는다. 비닐하우스도 만들지 않는다. 기술과 자본이 없기도 하지만 그게 지속가능한 농사이기 때문이다. 논밭에 비료를 적게 주고, 작물을 촘촘히 심지 않는다. 수확이 적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기른다. 비료든 뭐든 한번 투입하면 멈추지 못한다. 한 해가 아니라 여러 날을 생각하며 길게 바라본다.
 
농부가 있다. 마을 주민은 모두 농사꾼이다. 마을에 구멍가게가 두어 개 있고, 계절 따라 품팔이를 가는 사람도 있지만, 농사가 우선이다. 1년 먹을 쌀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자급자족하며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다. 외부의 변화에 큰 두려움이 없다. 누군가 얘기했다. “우리도 돈 없으면 못사는 건 알아. 시장에서 물건 사야 하는 것도 알지. 단지 돈에 혹하지 않고,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싶은 거야.”
 
품앗이가 있다. 모내기도 추수도 서로 도와가며 함께 짓는다. 집짓기도 인부를 사지 않고 이웃끼리 품앗이로 한다. 마을에서 나 혼자 잘난 척하면 따돌림 당한다. 돈 좀 있다고 폼 잡으면 아무도 품앗이에 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가난이 있다. 겨우 먹고 사는 정도다. 쌀은 넉넉하지만,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 고기는 명절이나 결혼 등 행사가 있어야 먹는다. 현금이 없다. 돈이 없다는 소리를 입고 달고 산다. 그럼 어떻게 사나? 가난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적게 먹고 나눠 먹는다. 부족하지만 넉넉하게 사는 길이다.
 
불편하다. 마을에는 있는 게 별로 없다. 여기 오는 손님들이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요?” 무엇이든 편리하게 만드는 게 개발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불편이 불평이 됐다. 나는 그냥 불편하게 산다. 살면서 불편한 게 당연하다. 왜 우리는 불편한 걸 싫어하나? 어디까지 불편한 걸 견딜 수 있나?
 
삶, 노동, 공부가 같이 있다. 한국은 삶과 교육이 분리되고, 삶이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한국 아이들은 자유시간이라고 주어져야 자유롭다. 스스로 만들거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자유 시간을 갖지 못한다. 마을에서는 노동과 삶, 공부와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자연에서, 학교에서 배운다. 놀이, 일, 학습의 구분이 없다.
 
세 민족이 있다. 라오에는 여러 민족이 산다. 인구는 라오, 크무, 몽 순이다. 우리 마을에는 몽족이 제일 많고 라오족, 크무족 순으로 산다. 말도 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오순도순 같이 산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사람, 말, 생각이 다르다는 걸 배운다. ‘다름’이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그냥 같지 않을 뿐이다.
 
축제, 즉 축하와 제사가 있다. 명절을 쇠고 잔치를 벌인다. 절에도 가고 집에서 고사도 지낸다. 천천히 살며 노는 걸 미루지 않는다. 내가 볼 때 한국인은 일하기 위해 살고 라오인은 놀기 위해 산다. 민족마다 새해도 각기 다르다. 시기도 쇠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결혼식, 장례식을 모두 집에서 치른다. 마을 사람들의 축하와 애도가 함께 한다. 가정과 마을이 분리되지 않는다. 마을 속의 가정, 가정의 연장인 마을이다.


▲ 아기는 내가 키운다. ⓒ이선재


가족이 있다. 대가족으로 3대가 같이 살고 4대도 있다. 결혼을 일찍 해 부지런히 가정을 꾸린다. 마을 아이들에게 물으니 부부만 있고 자식이 없으면 ‘가정’이 아니라고 한다. 가족과 친척이 서로 돌보며 산다. 라오에는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이 없다. 가족이 돌보고 가족이 없으면 친척이, 아니면 마을이 돌본다. 내 친구 ‘싸이’는 장애인이다. 조금 들을 수 있고 말은 거의 하지 못한다. 평형감각이 떨어진다. 이십 대 중반 총각이다. 어느 날 마을 아이들에게 물었다. 싸이 장가갈 수 있어? 아니 못가요. 왜 못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으니까요. 그럼 평생 어떻게 살아? 부모님이 있잖아요.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 자매가 같이 살 거예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노인들의 일이 있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집 안팎으로 일감이 널려 있다. 노인들은 살림에 필요한 대나무 밥통, 바구니, 소쿠리를 오랜 솜씨로 척척 엮어간다. 바쁜 농사철에는 주로 할아버지들이 아기를 업고 다닌다. 집안의 관혼상제, 의례는 노인들의 몫이다. 우리 센터의 캠프 송별식은 노인들이 주관하며 안녕과 행운을 빈다. 노인의 지혜가 마을 여기저기 그대로 숨 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이 존재감이 있고 살맛이 난다. 존엄하게 죽는다. 병원에서 코와 입에 주렁주렁 호수 끼고 연명치료 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족들 손을 잡고 생을 마친다.


▲ 장인의 손 ⓒ이선재


아동 노동이 있다. 시골에는 일이 산더미 같아 어린 애들도 일을 많이 한다. 들과 산으로 어른 따라 다니며 농사를 짓는다. 물을 긷고 땔감을 해온다. 밥도 짓고 동물 먹이도 준다. 어린 동생들 돌보는 건 그보다 조금 더 큰 아이의 몫이다. 그렇게 세상을 배우고 온전한 자기 삶의 힘을 기른다. 한국의 한 단체실무자가 홍보물에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더 이상 나무땔감을 구하는데 동원되지 않아도 되고’라고 쿡스토브(cook stove) 사업성과를 소개했다. 마을에서는 나무 땔감 없으면 밥 못 먹는다. 동원이 아니라 자기 일이다.

놀이가 있다. 아이들이 집 안팎을 뛰어다닌다. 들과 산으로 내닫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논다. 장난감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주변에 있는 모든 걸 가지고 논다. 집안 물건부터 자연에 있는 나무, 동물까지 모두 장난감이다. 연장, 칼도 마찬가지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다치지 않느냐고? 위험하고 자주 다친다. 어릴 때부터 다쳐가며 칼과 연장 쓰는 법을 익힌다. 주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창의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주변에 널려 있는 걸 살펴 고르고, 만지고, 만들며 새로운 생각을 하는 능력을 키운다.

동심도 있다.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공터를 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소리를 지른다. 크게 웃는다. 손을 마주 잡는다. 정신없이 뛴다. 무섭지 않나? 옷이 젖지 않나? 감기라도 드는 거 아닐까? 엄마한테 혼나면?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나서야 나도 그 아이들 마음에 들어간다.


▲ 마을 여느 집 부엌과 침대 ⓒ이선재


갈등이 있다. 여기도 사람 모여 사는 곳이라 부딪치고 충돌한다. 질투와 시기도 있겠지? 그래서 서로 눈치를 본다. 국어사전에 눈치는 ‘남의 마음이나 일의 낌새를 알아채는 힘’이라 나와 있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 전 상황을 살핀다. 싸움이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혹시 내가 많이 가진 건 아닌지? 내 힘이 너무 센 건 아닌지?
 
마을 스피커가 있다. 촌장님이 방송으로 회의 소집이나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내가 스피커를 좋아하는 건, 소통 때문이다. 마을에 7개 반이 있어 각 반장들을 통해 소식을 전할 수도 있고, 마을일꾼들이 집마다 다니며 알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집을 빼먹을 수도 있고, 일부러 가지 않을 수도 있고, 내용을 잘못 전달할 수도 있다. 스피커는 누구도 빼먹지 않는다. 꼭두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방송하기 때문에 모두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마을 스피커는 정보에 공평하다.
 
주민회의가 있다. 마을 전체 회의에 모든 주민이 오지 않고 가족 대표가 한 명씩 참가한다. 촌장님이 회의를 이끌어 간다. 정부정책과 정보 전달, 마을 공동사안 협의, 촌장과 마을지도자 선출 등을 한다. 그런데 회의를 자주 하지는 않는다. 일 년에 네댓 번 뿐이다. 그럼 주민 사이에 소통은 어떻게 하나? 필요 없나?
 
가축이 있다. 수천 년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물들이 가까이 있다. 소, 돼지, 닭을 우리에 가두지 않고 풀어 키운다. 개도 묶는 법이 없다. 진짜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고 주인이 조금 보충한다. 자연스럽게 짝짓기를 한다. 길에서 짝짓기 하는 개를 보면 민망하지만 그게 자연이다. 새끼도 스스로 낳는다. 뭔가 도와주러 온 일본인 수의사가 하는 말, “어허, 내가 할 일이 없네.”


▲ 꼬맹이들과 한가로운 소 ⓒ이선재


술이 있다. 왜 사람들은 술을 빚기 시작했을까? 취하려고? 우리 마을 라오족 사람들은 집마다 술을 ‘끓인다.’ 술을 담그지 않고 끓인다는 건 증류주란 뜻이다. 중국의 배갈 종류인 백주, 고량주, 한국의 안동소주는 끓여서 똑똑 떨어지는 술을 받는다. 모두 독한 술이다. 기본 40도부터 50도 넘는 것도 즐비하다. 내가 이 마을에 더 빠져드는 건 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행사에 마시는 건 물론이고 집을 찾아가면 두어 잔씩 권하는 바람에 금방 해롱댄다.
 
일상을 밀고 가는 힘이 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산다. 누구나 어디서나 미소와 웃음을 짓는다. 유대와 친밀감을 느낀다. 가정과 마을에서 돌봄과 보살핌을 받는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고 어려우면 도와줄 거라 생각한다. 그 힘과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래로 가는 여행


우리 마을이 세상 모든 시골 마을을 대표하지 않는다. 라오 마을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보통의 마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가 사는 마을이다. 이제 한국에는 이런 마을이 없다.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어려울 거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나도 다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한국은 마을을 살리고 공동체를 복원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대안을 찾아 세계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한다. 내가 공동체가 아니라 마을에 사는 건 대안과 동시에 기본을 살피자는 거다. 라오는 아직 농촌이 해체되기 전이고, 마을이 있다. 해체되기 전의 농촌? 무엇이 해체됐을까? ‘개발’을 통해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자! 좀 더 생각을 해보자.



기사 입력 일자: 2018-01-31

작성: 탐디(이선재) / tobefre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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