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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11호] 아래로 가는 여행 ③ 일상을 밀고 가는 힘

2018-03-02
조회수 1019

아래로 가는 여행
③ 일상을 밀고 가는 힘


[편집자 주] 발전대안 피다의 전신인 ODA Watch의 실행위원이었던 탐디(이선재)는 5년째 라오스에서 청년들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13~4년 OWL을 통해 '라오 이야기'를 연재해 라오스의 사람과 개발에 대해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피움 9호부터 라오 이야기 이후 사는 '힘'을 찾으러 떠난 긴 여행길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① 라오를 짝사랑한 남자 (클릭)
② 구름에 달 가듯 (클릭)

③ 일상을 밀고 가는 힘


청두를 떠나 어디로 갈까 지도를 살펴보다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래전 TV에서 '차마고도'를 보고 마음이 설렜었는데, 그 길 위에 섰다. 도로 G318, 시외버스가 대도하((大渡河)라는  강을 끼고 협곡을 달린다. 포장과 비포장을 반복한다. 길가 낭떠러지는 멋진 경치와 무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오래전 사람들이 이 험한 길로 다니며 차(茶)를 운반했다. 산 위쪽으로 새길을 닦는 공사가 어마어마하다. 지금 가는 길은 곧 없어질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서부 대개발의 일부인가?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길을 원하나? 길이 생겨 개발되나? 개발하려고 길을 놓나?


 
돈이 전부다!


버스가 길가에 섰다. 청두와 캉딩(康定) 사이에 있는 간이휴게실에 양쪽에서 오는 버스가 모두 섰다. 10여 대의 크고 작은 버스가 동시에 사람을 부린다. 오늘은 주말이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오간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간단다. 기웃거리며 먹을거리를 찾는다. 식당은 오직 하나, 나도 돈을 내고 줄 서서 음식을 받았다. 비싸고 맛이 형편없다. 식판에 돈 욕심을 듬뿍 담아준다. 앉는 곳도 없어 여기저기 서서 먹는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가야 한다. 사람들 뒤를 따르니 식당 뒤편에 작은 화장실이 있다. 최악의 중국 변소, 구멍은 여러 개인데 칸막이는 없다. 바닥에는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다. 사방에 오물투성이다. 재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섰다. 조금 떨어진 여자 쪽도 그렇겠지.


청두에 머물며 기분이 좋았는데 새 출발이 좋지 않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 음식도 화장실도 엉망이다. 돈을 엄청 긁어모으면서 조금의 배려도 없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다. 다른 선택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은 ‘힘’ 자랑을 한다. 내가 너보다 세지! 약육강식, 적자생존, 만인에 대한 투쟁, 모두 거짓이고 사기다.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자연은 나눔의 법칙이 있다. 몽땅 차지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고 폼 잡지만 여느 미물보다 못하다. 이런 세상이 망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
 


티베트의 땅


날이 추워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다. 어제 밤늦게 캉딩에 도착해 유스호스텔에서 손바닥만 한 전기장판을 깔고 잤다. 10월 말인데 완전 겨울이다. 옷을 끼어 입고 바깥에 나오니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크다. 장족(藏族)이라 불리는 티베트 사람들이다. 시내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사람도 건물도 산도 하늘도 심지어는 나는 새도 달라 보인다. 완전 다른 세상이다.

캉딩에서 잠시 새 세상에 젖어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미니버스가 눈이 내린 산을 힘겹게 오른다. 오방색 깃발이 나부끼는 '룽다'를 만난다. 잠깐 조는 사이 또 산을 하나 넘었다, 젊은 남자가 경운기로 밭을 간다. 땅, 땅이다. 땅 한 뼘이 중요하다. 농부들이 땅에 붙어 곡괭이로 갈아엎으며 모종을 심는다. 채소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나무가 없는 초원, 야크가 어슬렁거린다. 버스는 4,000m가 넘는 산들을 오르락내리락 곡예 운전을 한다. 음, 이 길로 다니려면 운수가 좋아야겠다.

리탕(理塘)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마을이라던데? 4천 미터 높이에 사람들이 산다. 점점 티베트 세계로 깊숙이 들어간다. 티베트 불교사원, 사원으로 가는 길이 한적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다정한 미소를 보낸다. 절문 앞에서 절을 하는 할머니, 우물에서 빨래하는 여자, 담소를 나누는 스님,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외는 아저씨. 평온한 일상이다. 종교도 다툼도 없다. 그런데 뭔가 느껴지는 긴장감, 장갑차가 시내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다. 이게 뭐야? 살벌하네! 저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여기가 바로 뉴스에 나오는 티베트 소요(?)가 격렬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경찰차가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질주한다. 정말 바빠서 그런 건지 경고하려는 건지 모르지만 신경이 거슬린다.

낯설지만 궁금한 도시다. 며칠 지내며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은데 몸이 말썽을 피운다. 고소증은 없는데 춥고 건조한 날씨에 살이 트기 시작한다. 바디로션을 사서 온몸에 바르지만, 소용이 없다. 추위는 견딜만한데 건조한 찬바람이 문제다. 아쉽지만 이틀 만에 리탕을 철수한다.


 
광장과 시장


나시족이 사는 리장(丽江),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게 관광객이 많다. 아침 광장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즐긴다. 광장의 모습을 찬찬히 살핀다. 다리 위에서 그림 그리는 남자와 옆에 쪼그려 앉아 구경하는 사람, 광장 한복판에 음악 틀어놓고 관광객을 위해 예쁜 나시족 의상을 입고 춤추는 이십여 명의 할머니들, 이빨이 닳도록 세게 힘을 줘 박박 이 닦는 아저씨, 가게 구석구석 먼지를 쓸어내는 점원들, 은행에서 붉은색 100위안짜리 한 묶음 찾아 손에 들고 가는 가겟집 남자, 숙소에 뭐가 필요한지 잡화점에서 물건 사 가는 검은 옷의 객잔 여주인, 어느 민족의상인지 모르지만 잘 갖춘 옷을 입고 포즈 잡는 어깨 넓은 여자 모델, 긴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맨 프로와 아마추어 사진사들, 지각했는지 허겁지겁 달려오는 옷가게 아가씨, 아침부터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점원들, 남들은 뭘 하든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과자 먹는 여자아이, 단체 사진 찍으며 줄지어 서서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빨간 소방차를 몰고 가는 씩씩한 소방관들, 고운 나시 의상을 입고 마스크와 노란 코팅장갑 끼고 광장 구석구석 청소하는 아주머니, 팔목에 앉은 새끼 독수리 보여주며 사진 찍기 권하는 장사꾼 아저씨, 리장에 부자가 많은지 비싸 보이는 개 데리고 산보하며 눈길 끄는 남자들, 목이 말라 우유를 사려는 나에게 신선하다며 요구르트를 권하는 안내소 청년, 나는 광장의 아침을 하나씩 마음에 담는다.

이번엔 시장이다. 고성 충의시장, 굉장히 크다. 시장만 봐도 리장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 알 수 있다. 없는 물건이 없고 활기가 넘친다. 오전 11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가득하다. 잠시 길가에 앉아 메모를 한다. 내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자전거가 끄는 작은 손수레에서 채소를 판다. 이 손수레가 가게다. 그 옆에 손수레를 놓고 가게를 만들었던 할머니는 여행사가 문을 열자 자리를 옮긴다. 삶의 공간, 고된 삶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골목에도 광장에도 한 평, 아니 손바닥만 한 공간이 있으면 물건을 펼쳐 놓고 판다. 그 한 뼘의 공간 때문에 죽고 살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시장 입구에 앉았다. 경비들이 쳐놓은 파라솔 밑에 살짝 끼어들어 그늘 덕을 본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사람들, 갑자기 경비들이 노점상을 쫓아낸다. 시간이 정해져 있나? 아니면 높은 사람이 오나?


 
누가 중국인일까?


캉딩, 리탕, 상그릴라. 리장, 샤시(沙溪), 따리(大理)를 거쳐 왔더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헛갈린다. 중국에 있는 게 맞나? 깊은 산속, 소수민족, 자기 말, 민족의상, 추운 날씨, 관광지, 모두 중국임이 틀림없지만 다른 중국이다. 이곳이, 이 사람들이 중국의 보통(?)은 아니다. 그럼 중국은 무엇이지? 한족? 중국어? 중국의 남서쪽을 여행하며 드는 감정이 복잡하다.

내가 사는 왕위앙에도 중국인이 많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사람은 중국인인가? 라오와 이웃하는 중국 윈난, 시촨성은 소수민족이 많다. 자연스럽게 왕위앙에 온 중국인은 소수민족이 많을 거다. 그럼 그 사람들은 중국 사람인가, 소수민족인가? 우리는 그냥 중국인이라 부른다. 중국에 살아서? 중국 여권을 가져서? 소수민족, '소수'의 뜻은 무엇일까? 숫자가 적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지난 역사를 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사람들이 이동했다. 특히 몽골이 중국을 치고, 중국이 남쪽으로 밀리면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더 남으로 피난을 왔다. 지금 라오족도 그렇게 내려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사람들이 내려온다. 이번에는 전쟁이 아니라 돈 때문에.

넓은 중국 땅, 시간대가 모두 같다. 동쪽 베이징에서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서쪽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간다. 왜 같은 시간에 움직여야 할까? 그게 중국이 천하를 지배한 방식이었나?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왜 같은 틀 속에 넣으려 하지? 억지로 너의 정체성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어느 틀로 나눌 이유도 없다. 그냥 우리는 각자, 즉 각각의 자신이다. notthesame, 네이버와 다음의 내 아이디다. 나는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 같지 않으려 한다. 아니 같을 수가 없다.
 


믿는 게 종교다.


예쁜 성당이다. 가톨릭 신자가 왔으면 참 좋아했겠다.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정면에 큰 글씨가 쓰여 있다. '천주시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 위에 조금은 촌스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예수 사진이 있고 양옆에서 천사들이 손을 모아 받드는 모습이다. 천사가 남자처럼 보이고 그림도 유치원 수준이다. 그 아래 십자가가 있다. 천정에는 별과 해가 촘촘히 그려 있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띤다. 부드러운 느낌으로 유치원에 온 기분이다.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그 성당은 여기보다는 작았지?


▲ 따리 성당 ⓒ이선재


중국인들은 가톨릭에 큰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모두 불교나 도교를 믿는 것도 아니다. 기복의 대상이 되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얼하이에 모택동을 섬기는 가족이 있었다. 하긴 종교가 별거인가, 믿는 게 종교지? 어제 오후에는 모스크, 오늘 아침에는 교회, 지금은 성당을 찾는다. 따리는 윈난의 역사중심지답게 종교 시설이 여럿 있다.

적막이 흐른다. 가끔 한두 사람이 들러보고 간다. 불과 100미터 떨어진 큰길은 바글바글하다. 쉬면서 생각하기에 딱 좋다.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어깨가 높이 올라갈 정도로 숨을 들어 마신다. 나는 누구를 믿나? 인문주의? 인본주의?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종교도 있는 거 아닐까? 종교가, 믿음이 사람을 억누르면 곤란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깜박 졸았다. 이제 일어나야지.
 


다른 메콩


란창강(瀾湌江)을 건넌다. 여섯 나라를 지나는 메콩강을 중국에서는 란창강이라 부른다. 메콩은 라오에 처음 왔을 때부터 줄 곳 내 마음을 끌고 있다. 이미 아래쪽은 모두 다녀왔고 지금 마지막 남은 상류를 지나고 있다. 란창강은 상류답게 폭이 좁고 협곡이 많아 댐을 짓기 좋다. 중국은 이미 7개의 댐을 지었고, 21개를 더 지을 예정이다. 산업화, 서부 대개발에 많은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댐은 이로운 점도 있지만 문제도 많다. 그 문제가 국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웃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콩의 아래쪽에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5개 나라가 있다. 하류에 이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거다. 중국이 댐에 물을 가둬 강물이 줄면, 캄보디아의 황금어장인 톤레삽 호수의 물고기도 줄고, 베트남의 곡식 창고인 메콩 델타는 바닷물이 역류해 농사와 양어장을 망칠 거다. 중국은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다. 이제 강은 인간의 삶을 위한 곳이 아니라,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11월 13일


▲ 얼하이 호수 전경 ⓒ이선재


얼하이(洱海)라는 바다처럼 넓은 호숫가에서 한가한 아침을 맞는다. 여기저기 메일을 보낸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 와서도 세상과 연락을 하며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쓸데없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고 예쁜 섬, 그 안의 귀여운 집, 갈매기와 나룻배들, 바람과 물결, 구름과 햇빛, 산과 물그림자, 점점이 보이는 호수 건너 하얀 집들, 물가 노점과 빨간 파라솔, 빵차와 오토바이, 울긋불긋한 여행자의 옷차림, 공사장 인부와 삽질 소리.

보이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반응이 있나? 느낌이 있을까? 생각은? 흐름, 움직임, 공간, 비움, 채움, 내 눈앞에 있는 호수 위 이 넓은 공간에는 무엇이 있나? 햇빛이 평화롭게 펼쳐진 이 물과 하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기, 따스함, 포근함? 또 뭐가 있지? 여기 오는 여행자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가져갈까? 평화, 안식, 마음, 아름다움, 사진, 기억, 추억? 나는? 잠시의 휴식, 매일의 일상, 흘러가는 길?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우리는 한 뼘의 땅으로 싸운다. 쓸모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한다. 그걸 가치라고 하는데, 가치는 무엇일까? 왜 누구에게는 가치가 있고, 누구에게는 없을까? 모두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푸성귀 파는 노인들


▲ 푸성귀 파는 노인 ⓒ이선재



시장으로 가는 길,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따른다. 나는 매일 아침 시장에 간다. 아침 시장은 흥이 난다. 소리도 좋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북적북적, 가끔은 옥신각신. 어수선하지만 살아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채소 파는 곳에 이른다. 바닥에 푸성귀를 펼쳐놓은 노인들이 가득하다. 가만히 살펴본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티가 난다. 표정에, 손마디에, 옷가지에, 펼쳐놓은 채소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사람들. 점포 문을 하나씩 열면서 노점이 쫓겨난다. 어디로 가나? 쫓겨나지 않는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도 자리다툼, 눈치 보기가 있을 게다.

매일 아침 노인들이 무심히 앉아있다. 왜 손님을 부르지 않을까? 팔려는 마음이 없나? 그럴 리 없다.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있다. 나는 멀찍이 앉아 바라본다. 노인들은 조급하지 않다. 길게 쉬는 숨이다. 알지 못하는 힘을 느낀다.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을 찾으러 중국 변방에 왔는데, 혹시 이것 아닐까? 노인들이 일상을 밀고 간다. 아침 시장에는 대박도 없을 테고, 손님 없어 공치는 날도 덤덤할 테고, 자리에서 쫓겨난다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을 게다. 왜 기쁜 날, 슬픈 날이 없겠나? 다만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꿈이나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다. 끈기와 의지로 매일을 밀고 간다. 일단 ‘일상을 밀고 가는 힘’이라 부르자. 일상이 무엇인지, 밀고 간다는 게 뭐고, 어떤 힘인지는 잘 모른다. 앞으로 과제가 되겠지.

변방, 소수, 다름, 차별, 가난이 삶의 한 단면이라면 미소, 나눔, 의지, 힘, 일상은 또 다른 얼굴이다. 3개월 동안 걸으며 함께 한 생각들, 여행길에 만난 따뜻한 마음과 미소, 아침 시장의 소란과 일상을 밀고 가는 힘, 푸딘댕 친구들과 마실 술병, 모두 가방에 구겨 넣고 라오에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숙제를 풀어보자. 새로운 여행을 준비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7-11-22

작성: 탐디(이선재) / tobefre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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