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5호] 미얀마의 로힝야와 한국의 예멘 난민 -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와 나눈 우리 시대 혐오에 대한 이야기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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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로힝야와 한국의 예멘 난민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와 나눈 우리 시대 혐오에 대한 이야기


이유경 기자를 처음 만난 곳은 페이스북이었다. 미얀마 정부가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약 천여명의 로힝야를 학살하고 7만여명의 이주 사태가 벌어진 2016년 가을 즈음이었다. 한국 언론은 이 참혹한 인권탄압의 배경을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위해 로힝야를 ‘19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로 규정했고, 사람들은 반무슬림 정서를 응축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당시 이유경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작금의 버마에서 나타나는 전투적 불교는 그 사회에서 가장 박해 받는 로힝야 무슬림, 그리고 여타 무슬림을 ‘적’으로 설정한다”라고 일갈해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최근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멘에서 난민 500여명이 들어와 제주가 곤란해졌다는 비보 아닌 비보에 급기야 난민을 ‘반대’하는 집회가 일어났다.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에게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우리 사회가 어쩌면 로힝야를 적으로 규정하는 미얀마 사회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 만연한 배제와 차별에 일침을 날려온 이유경 기자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피움 편집위원회는 지난 6월 30일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를 만나 미얀마와 한국에서 나타나는 혐오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타인을 배척하는 것이 나의 권리를 지키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국제분쟁전문기자로 십여년 간 동남아시아의 숨가쁜 21세기를 취재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아시아의 분쟁을 따라 움직인 14년.


▲ 이유경 기자님 인터뷰 현장 ⓒ 발전대안 피다


피움 편집위원회(이하 피움): 국제분쟁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이력이 궁금한데 피움 독자들께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유경: 저는 프리랜서 외신기자입니다. 14년 정도 일을 해왔고 태국 방콕에 베이스를 둔 것이 10년 조금 안 되었어요. 취재 이슈에 따라 동남아에서 계속 이동해서 다녔구요. 2003년 1월에 한국을 떠나 초기 몇 년은 특정 거처를 정하지 않고 바닥부터 배우자는 심정으로 해서 계속 움직이면서 취재하고 기고하며 살았어요. 관심 주제가 국제분쟁이슈이다 보니 당연히 여러 나라의 정치상황 등을 두루 취재하게 되었어요. 현재는 한국일보에 기사를 기고하지만 작년까지 쿠키뉴스에도 기고했었고 한겨레에 오래 기고했어요. 그 밖에는 시사인, 경향, 독일 언론에도 기고했고 지금은 조금 자유롭게 3차 취재 현장 르포를 지향하고 있는 기자입니다.


피움: 취재 이슈에 따라 거처를 옮기는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데 취재 지역을 주로 동남아시아로 선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경: 한 번 거쳐간 이슈를 다시 보게 되잖아요. 제가 2003~2004년부터 기자로서 취재를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서쪽으로 여행을 했어요. 태국, 미얀마, 인도,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시리아, 레바논... 초기 한 3년여를 쭉 계속 이동하면서 취재를 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아는 이슈와 연결되는 일들이 터지면 관심 가고 막 흥분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계속 다시 돌아오게 되죠. 2007년 7월에 시리아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그 때 미얀마에서 샤프란 혁명(미얀마 승려의 반정부 시위)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 취재했던 미얀마에서 엄청난 상황이 벌어지니까 당연히 가야할 것 같은 거죠. 의무감 같은 것. 그래서 미얀마로 갔어요. 대륙에 제한을 둘 생각은 없는데 그런 연유로 아시아에서 10여년 있게 됐어요.


피움: 처음 취재하신 기사는 미얀마의 어떤 이슈였나요?


이유경: 미얀마, 태국 국경에는 항상 이슈가 많죠. 그때 제가 국경 그리고 정글로 트래킹 해서 미얀마 안으로 들어갔어요. 전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All Burma Student Democratic Front)의 활동을 취재하려 함께 행군했는데 첫 현장이 매우 혹독 했어요. 우기였거든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지만 어쨌든 가야 하잖아요.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그렇게 산 사람들이니까요. 민주화를 외치며.



로힝야는 누구이며, 왜 탄압받는가.


피움: 첫 취재 현장이 미얀마였기 때문에 이후에 로힝야 탄압에 지속적으로 관심 갖게 되신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미얀마 이야기로 넘어가면, 페이스북에 포스팅 된 글을 보면 특히 로힝야 탄압의 원인을 역사적 배경에서 찾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많이 표현하신 것 같아요. 언론에서는 로힝야가 영국 식민통치 시기에 인도에서 이주해 미얀마 사람들을 관리했던 불법 이주민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들이 탄압의 대상이 된 근본적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유경: 저는 이 원인을 역사로 설명하는 것이 (미얀마 정부 입장에서) 상당히 ‘편리한 도구’인 것 같아요. 현재 엄청난 학살과 대탄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옛날 역사와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잘못된 이론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미얀마 군부가 설명하는 것은 가해자의 논리에요. 최근 일어난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로힝야를 벵갈리(Begali)라고 부르고 로힝야라는 이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국제인권법이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자기 호명의 권리에 위반되는 거예요. 내가 내 자신을 이유경이라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인데 그걸 거부당하고 있죠.

역사적으로 보면 로힝야는 수백년 동안 아라칸주(Arakan), 라카인주(Rakhine)라고도 하는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에요.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영국령 인도(British India)가 되면서 버마가 한 주가 됐잖아요(1885년 영국이 미얀마 식민통치를 시작했지만 미얀마는 하나의 피지배국이 아닌 영국령 인도의 한 주로 편입됨). 인도, 미얀마가 모두 영국이 지배하는 하나의 나라였고 거기서 노동력의 이동이 발생한 거예요. 그런데 그 사실을 두고 영국이 미얀마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해 인도인을 이주시켰다는 것은 안 맞는 말이죠. 그 이전의 역사적 논쟁을 보면 8세기론, 15세기 그리고 18세기론이 있는데 모든 시대에 그 지역에 모스크가 있었어요. 제1차 버마 앵글로 전쟁(미얀마-영국 전쟁)이 1824년이었는데 이미 그전에 무슬림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로힝야 거주지역인 아라칸주의 마지막 왕조인 아라칸 왕조도 불교와 무슬림이 공존하던 다민족사회(multi-ethnic society)였어요. 오늘날의 아라칸주에 무슬림 커뮤니티가 적어도 15세기부터 있었다는 증거이죠. 그리고 아랍 상인들이 이 지역에 도착한 것을 8세기로 보거든요. 로힝야가 아랍 상인의 후예라는 논리로 보면 (정착 시기를) 8세기로도 볼 수 있어요. 이 문제는 철저하게 인권의 문제이고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진 대학살을 지적해야지 자꾸 초점을 과거로 가져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피움: 사실 미얀마가 많은 민족의 연합으로 구성된 나라인데 어떤 한 민족을 탄압하기 위해 나머지가 하나의 논리로 뭉치는 것이 놀라워요. 이러한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이유경: 제가 보기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 것 같아요. 이슬람 포비아, 저는 그걸 굉장히 심각하게 보거든요. 지금 한국도 비슷해요.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무조건적이잖아요. 예멘 난민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을 것 아니에요. 로힝야도 비슷해요.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들이 로힝야를 만나본 적도 없는 경우가 다수에요. 왜냐하면 로힝야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거든요. 당연히 다른 민족 그룹과 섞일 일이 없죠. 그리고 미얀마 사회자체가 오랜 군부독재를 거치며 폐쇄적으로 형성되기도 했고, 역사 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이 붕괴되면서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수십년을 이어왔어요. 그리고 불교 승려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도 커요. 승려들이 굉장히 민족주의적인데 이 논리가 글로벌 정치에서 작동하는 이슬람 포비아와 맥이 닿아 무슬림 혐오 정서가 형성되었다고 봐요. 본질적으로 보면 인종주의죠. 그들을 깔라(Kalar)라고 부르잖아요. 약간 니그로(negro)와 같은 의미에요. 이미 비하가 전제된 호칭이지요.


피움: 그 깔라라는 단어가 조지 오웰의 <버마시절>에도 나와요. 굉장히 오래된 책이라 이게 신조어가 아니구나 싶었어요. 컬러(color)라는 단어가 변형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뜻.


이유경: 그게 원래 외국인, 외부인 이런 뜻이에요. 순수하게 그런 뜻인데 외부에서 온 로힝야, 무슬림한테 깔라라고 그래요. 로힝야는 당연히 깔라구요. 로힝야가 아닌 무슬림(Burmese-Indian)에게도 너희는 원래 여기 속하지 않았다는 사회적 함의가 담긴 언어로 개발된 거죠. 여기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 아웅산 수치 책에도 깔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괄호하고 foreigner라고 써놨더라구요. 언어가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의미가 확산된 경우겠죠.

 


에멘 난민과 마주한 한국 사회


피움: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예멘 난민과 마주한 한국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전에도 있었지만 안 보이게 어디선가 일하고 조용히 살던 이주민(특히 무슬림) 수백명이 갑자기 나타났잖아요. 나라도, 종교도, 민족도 나와 다른,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게 되니 큰 반응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유경: 지금 방글라데시는 몇 달 간 70여만명의 로힝야 난민을 받았어요. 한국에 온 난민은 500명이지만 거긴 70여만명이에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이미 지난 40년간 누적된 인구로 따지면 120만 이상이고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건 불가능해요. 어쨌든 100만이 넘는 난민들이 왔고 고작 몇 달 동안 70만명 넘는 사람들이 와도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잖아요. 갈등이 없겠어요? 방글라데시 얼마나 가난한 나라입니까. 국경에 야생 보호구역까지 캠프가 막 들어찼잖아요. 한국 국격 입에 올리지도 말자고 트윗을 남겼어요 오늘.

저는 지금 한국의 상황이 많이 심각한 것 같아요. 매우 사소한 커뮤니티 내의 갈등이 학살로 이어지는 상황과 역사를 취재하다 보니까 그 어떤 것도 사소하지가 않더라구요.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 500명 가지고 이 난리가 나는 것을 보면서 지금 이 관문을 잘못 넘으면 한국사회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정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커뮤니티의 갈등은 초기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다들 제주에 난민 500명 왔다고 이런 식으로 반대 집회까지 할 거라고 별로 생각 안 했을 거예요.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쪽이 개개인도 있겠지만 일부 종교계, 일부 페미니스트 그룹 같이 소위 ‘그룹화된 그룹’이 이렇게 무서운 논리를 펴면 위험하다고 봐요.


피움: 처음에는 예멘 난민들이 이슬람 문화를 고집하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다가 이들이 일하면서 적응하려고 노력한다는 기사가 나오니까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댓글이 달리더라구요.

 

이유경: 끊임없이 의심하죠. 계속 증명하라는 거예요. 정부 차원이나 시민사회를 통해 초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 책임도 크다고 봐요. 언론이라는 것이 정보 전달의 기능도 하지만 사회 재교육의 기능도 해요. 그런데 한국 언론이 국제 이슈에 얼마나 이해나 관심이 없는지 느껴요. 일단 예멘 난민들을 트러블메이커로 이미지화하고 보도를 하더라구요. 지금 이들 때문에 제주가 골치 아픈 상황이라는 식으로. 난민에게 침입자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표현을 주의해야 해요. 한국은 1992년도에 난민협약에 비준했고 2013년부터 난민법을 시행하기 시작한 국가에요. 그래서 난민을 수용할지 말지 국민 토론을 할 일이 아니에요. 무조건 국민에게 묻는다고 해서 민주사회가 아니거든요. 정말 독일처럼 난민이 너무 많아서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이라면 토론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막 난민이 왔고, 500명 규모인데 이 정도의 상황을 보도하면서 부정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니 국제협약 비준의 의미가 무엇이고 난민 문제 책임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없이 여론이 반대하게 되고, 반대하는 것을 쫓는 방식으로 보도가 되는데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피움: 우리 사회가 힘을 합쳐 정의롭지 않은 권력을 축출한 경험도 있고 지방선거를 통해 무능한 보수 세력을 심판하기도 했지만 타인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배타심이 확대되는 이 상황을 보자니 우리 사회가 진보됐다거나 보수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어요. 


이유경: 그래서 아시아의 민주화 과정도 보면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비하는 것과 그 사회의 포용력과 인권 정립의 정도는 다르더라구요.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오히려 파시즘적인 요소가 더 나와요. 인도네시아나 미얀마도 그렇게 볼 수 있고요. 한국을 보면 민주적으로 상당히 성숙한 힘을 보여줬는데 아직까지 이 사회의 기저에 우리가 건드리지 않았던 뇌관, 인종주의 그리고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혐오 감정과 정서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었던 거죠. 예멘 난민들이 옴으로써 이 상황을 건드렸어요. 우리가 지금 무슬림 커뮤니티가 우리사회에 많이 안 보여서 그렇지 곧 보이는 상황이 될 수 있잖아요. 어쨌든 우리는 멀티 소사이어티로 가는 상황인데 이런 온라인 폭력과 혐오가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걱정이 많이 돼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실험을 하는 것 같고요.  


피움: 사실 지인들이 일상적으로 혐오 발언을 할 때 그런 실험대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문제의 본질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유경: 제 생각에는 입장은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지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사실 관계는 바로 잡아야겠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회가 이 공포를 조성하는 거잖아요. 혐오와 공포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아요.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허위라는 것.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커뮤니티를 부당하게 판단해서는 안되는데 그런 일반화의 오류가 얼마나 무서운 편견을 만듭니까. 역으로 생각해서 한국사람도 여러 상황에서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대면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대비시키면서 설명을 하는 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팩트에 기반해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학습하고 재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한국 사회의 혐오 세력에 대해서 사실 굉장히 당당하고 정확하게 포지션 두고 맞설 필요는 있는데 그러려면 피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무 이유가 없이도 가능하지만, 싫어하는 감정에는 항상 타당한 사유가 있다. 아마 그 자체가 정당한 감정이 아니기에 스스로 그 감정을 갖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싫어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병적으로 심해질 때, 예를 들어 상대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가진 사회적 배경만으로 위협적인 존재, 배제해야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혐오이다. 우리는 그간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음에도 동시에 누군가를 혐오하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맨 난민 500명을 거부하는 한국의 미래를 수세기 간 존재했던 민족을 축출하는 미얀마에서 보았다면 과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타인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해서 내가 이 사회에서 더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이유경 기자가 지난 달 페이스북에 강렬하게 남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은 이제 혐오와 싸워야 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7-31


작성: 송유림 피움 편집장/salamatpo7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