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야기[14호] 한국 ODA가 필리핀 선주민을 울리다 - 필리핀 할라우댐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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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ODA가 필리핀 선주민을 울리다

필리핀 할라우댐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편집자 주] <한국 ODA는 왜 필리핀 주민을 울리는가- 필리핀 할라우댐 사례를 중심으로> 공개 간담회는 지난 4월 5일(목) 오후 7시 스페이스노아 커넥트홀에서 기업인권네트워크와 Icoop 생협,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할라우댐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평화로웠습니다. 

할라우강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우리 선주민의 역사입니다. 

댐 공사가 시작되면 이제 우리는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이곳에서 떠나야만 합니다. 

왜 우리가 떠나야 하는 거죠?”


지난 4월 5일 열린 공개간담회 <한국 ODA는 왜 필리핀 주민을 울리는가> 에서 피해자이자 선주민인 레미아 카스토(Remia Castor)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해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할라우강과 함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들의 삶에 대해, 댐 사업이 시작되면 잃어버릴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개간담회 자리를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귀 기울여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라우강은 선주민들에게 그들의 역사이자 삶 그 자체이다. 지역 주민들은 할라우강에서 나는 물고기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고, 할라우강의 흐름에 몸을 맡겨 더위를 식히며, 할라우강의 비옥한 강물로 농사를 짓고 가축도 기른다. 평온했던 삶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한국 정부가 필리핀 재무부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한 날부터다.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은 「필리핀 할라우강 다목적사업(2단계)」에 유상원조 사상 최대 규모인 2천 5백억원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해당 사업은 필리핀 일로일로주 할라우강에 102m, 40m, 24m등 3개의 댐을 건설하고 81Km 길이의 운하로 연결하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필리핀 정부는 댐이 건설되면 쌀 수확량이 증가하고 도심과 인근 마을에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으며, 전기공급 및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머나먼 한국 땅에 와 오히려 댐이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피해지역을 설명하고 있는 선주민  ⓒ JRPM



필리핀 선주민들은 왜 할라우 댐 건설을 반대하나

 

“댐 건설 예정지역은 웨스트파나이(West Panay) 활성 단층이 지나가고 있어요. 

1948년에 이곳에서 진도 8.2의 지진이 발생했다고요. 

그런데도 필리핀 관개청(NIA: National Irrigation Administration)은 

웨스트파나이 단층이 ‘휴면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답답한 듯 파나이-기마라스 선주민네트워크의 신시아 디두로(Cynthia Deduro) 사무총장이 말했다. 필리핀 화산지진연구소(PHIVOLCS)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1차례 사업 지역인 일로일로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 수출입은행 면담자리에서 활성 단층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자 수출입은행 관계자들은 외부 전문가에게 해당 지역의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가능성에 대해 기술 검토한 결과, 댐 안정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며 설계 시 해당 지역 내진 기준보다 엄격한 진도 8.5 내진 설계를 반영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약하지만 여전히 진도 2.1의 지진이 감지되고 있고 과거 진도 8.2의 강진이 발생한 그 지역에서 감히 누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진 안전지대로 인지되어 온 한반도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는데. 활성단층이 있는 곳에 대형 댐 건설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할라우 댐이 건설되면 총 16개 마을, 1만 7천 명의 주민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중 3개 마을은 완전히 수몰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정부는 비자발적인 이주민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진입로 및 댐 공사로 농경지와 거주지를 잃게 될 선주민들의 입주 주택 및 주변 편의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거주지는 물론 농경지까지 잃은 주민에 대한 보상책 역시 미비하다. 레미아 사촌은 댐 공사를 위한 도로 공사로 인해 1헥타르(3,025평)에 이르는 땅을 정부에 넘겨줘야 했지만 보상금으로 1,800페소 (약 3만 6천원)밖에 받지 못했다. 현재 지역 주민들은 필리핀 정부의 이주 압박에 못 이겨 이주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상황이다.



필리핀 국내법 위반한 사업 정당할까


“할라우 댐은 필리핀 현지 법을 위반했습니다. 

2009년 타당성조사 당시 진행했어야 할 자유의사에 따른 

사전인지동의(FPIC : 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절차를 

타당성 보고서 제출 후인 2012년에서야 진행했습니다.”


“필리핀 선주민청과 관개청은 지역 주민들에게 댐 사업의 장점만을 부각하고 

활성단층의 존재나 지역사회 침수 가능성과 같은 위험요소,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JRPM, Jalaur River for the People’s Movement) 활동가 존 알렌시아가(John Alanciaga) 말했다. 사실 필리핀은 1997년 제정된 선주민권리법(IPRA:Indigenous Peoples Rights Act, 1997)에 따라 선주민의 권리를 보장해왔다. 선주민 거주지역에서는 개발사업을 착수할 때 FPIC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기서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만 사업 착수가 가능하다. 신시아는 사전인지동의를 얻는 과정 자체도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관개청이 사업을 반대하거나 찬성을 주저하는 주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FPIC 과정에 관여하였다는 것이다.


FPIC 가이드라인(2006)에 따르면 선주민위원회(NCIP: National Commission on Indigenous Peoples)는 선주민의 ‘동의/비동의’ 결정을 존중하고 선주민의 결정에 따라 사업 진행여부가 결정되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FPIC 2단계 획득 과정에서 3개 마을이 비동의(non-consent)를 제출했음에도 1개 마을의 비동의만 접수되었다. 결과적으로 비동의 마을이 있었는데도 2단계 FPIC 획득한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FPIC 획득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FPIC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절차적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필리핀에 정말 대형 댐이 필요할까


필리핀 정부는 1950년대부터 지속해서 대형 댐 건설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현재 총 149개의 수력발전소와 16개의 지열 발전소 계획이 완료되었거나 공사 중 또는 준비 중이다. 이런 대형 댐은 대부분 선주민 거주지역에 건설되었다. 댐 건설이 불러올 각종 부작용과 피해는 오로지 선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필리핀 할라우 댐 사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선주민들의 반대와 저항에 직면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지역단체와 선주민들은 할라우 댐 사업을 반대하며, 정부 관계자 면담, 기자회견, 집회, 고소, 고발, 칼럼 기고, 국제 연대 미션 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활동하여 2016년 종료 예정이었던 할라우 댐 사업의 본 공사를 지금까지 막아왔다.


개도국의 빈곤감소, 인권 향상 등 인도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개발원조(ODA)가 필리핀 주민들의 삶을 고통스럽고 위태롭게 하고 있다.



개발원조 사업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개발원조 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사회적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세이프가드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대규모 유상원조사업에서 인권침해, 환경 파괴 문제가 계속되자 ‘세이프가드’를 수립했다. 할라우 댐 사업은 EDCF 세이프가드를 적용하는 첫 번째 사업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이프가드 이행 책임을 개도국 정부에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협력국 정부가 세이프가드를 이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개발사업 지역의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공사피해와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제도를 갖추도록 독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출입은행은 현재까지 할라우 댐 사업과 관련하여 총 15차례 환경·사회 모니터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이 해당사업에 대해 파악한 문제점과 쟁점은 무엇일까? 반대 주민들의 의견은 어떻게 수렴하여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FPIC 획득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취한 조치는 과연 무엇일까? 면담 자리에서 여러 차례 문의하였지만 수출입은행은 속 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 환경·사회 모니터링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필리핀 정부에 귀속되어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여러분들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세요. 

한국 ODA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할라우 댐으로 우리의 터전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존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빈곤퇴치와 인도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ODA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오히려 협력국의 환경을 파괴하거나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개발협력은 과거와 달라질 수 있을까?


▲ 공개간담회<한국 ODA는 왜 필리핀 주민을 울리는가> 끝난 후 © 참여연대



기사 입력 일자: 2018-05-31


작성: 이영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 youngah@psp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