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16호]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책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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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책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나는 지구촌나눔운동의 르완다 주민조직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말 파견되어, 지금까지 르완다의 한 농촌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약 2년 정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 흥미로운 일을 많이 겪었는데, 특히 돈과 관련해서는 르완다 사람들과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느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사례1. 르완다에서 머무는 숙소 근처에는 예전에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몰락한 T펍이 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5분이면 도착하는, 가장 가까운 펍이라 르완다 생활 초반에는 자주 드나들었고, 펍 주인 P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즐겨 꽤 친해졌다. 어느 주말, 오후부터 T펍에 걸터앉아 펍 주인 P와 사업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며 맥주 한 병 하고 있었다. 수도 키갈리에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 있고, 잘 되면 얼마를 벌 것이고, 그럼 결혼도 할 거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P가 내일모레 사업 관련 세금을 내는데, 혹시 5만 프랑(한화 약 6만 3천 원)만 빌려줄 수 없냐고 물었다. 탄자니아에서 돈을 몇 번 빌려줬다가 골치 아팠던 적이 있어서 이제 돈 빌려주지 말아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뭐가 씌었는지, 좋아하는 가게가 세금을 못 내서 닫으면 안 되지 하면서 선뜻 돈을 빌려줬다. 나름 공책 한 장 찢어서 언제까지 갚겠다는 각서도 썼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지갑에 끼워둔 그 각서가 삭을 때까지도 그는 돈을 갚지 않았다. 처음엔 지날 때마다 찾아가서 독촉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요즘 손님이 없어서 여유가 없다고 했다. 진짜 손님이 없긴 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고, 나는 돈 받길 포기했다. 그리고 그 펍에 발길도 끊었다. 펍을 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웃이라 길에서 종종 만나는데, 그는 언제나 해맑게 인사하며, 꼬치랑 맥주 마시러 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말했다. 어쩌다가 한번 맥주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빌린 돈이 있으니 돈 내란 소리 안 하겠지 했는데, 돈을 받았다. 분명 그도 나에게 꾼 돈이 있다는 걸 알 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사례 2. 한 번은 주말에 수도 키갈리에 놀러 갔다가, 내가 한국에서 졸업한 대학교 이름이 박힌 과 잠바를 입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유심히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먼저 인사를 했고, 나는 그에게 이 학교를 나왔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는 정부 장학금을 받아 석사학위를 거기서 딴 사람이었고, 그땐 나와 그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걷던 터라,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길 기약하고 번호만 교환했다. 그러고 한참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연락이 왔는데, 5만 프랑만 좀 빌려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그간 나름 거절하는 요령이 생긴 나는 “우정을 위협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겐 돈을 잘 안 빌려준다”라고 대답했고, 그는 “hhh. I like that”라며 순순히 물러났다.  

사례 3. 아프리카에서는 돈 빌려주면 잘 못 받는다는 속설과 달리, 내가 참여하는 사업에서 진행한 소액대출의 상환율은 상환 만기일 기준 97%였다. 이 정도면 한국 사람들보다 빚을 잘 갚은 것 같은데, 돈 안 갚으면 잡아갈 힘도 없는 외국 NGO가 빌려준 돈을 어쩜 이렇게 잘 갚았을까? 소액대출 사업을 하면서, 상환율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을 썼는데, 어느 게 유효했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우리 사업은 자조 그룹이라는 모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대출 심사에 그룹 내 동료평가를 적용했다. 이 사람이 돈을 갚을지 여부를 그룹원들이 일차적으로 판단하게 한 것이다. 이번에 돈을 빌린 여러분이 돈을 갚아야 다음에 동네의 다른 사람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대출금이 일종의 공공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 외에도 정기적인 모니터링 등이 있긴 했는데, 어떤 연유로 이분들이 돈을 이렇게나 잘 갚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속설과 달리 돈을 잘 갚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돈을 잘 갚아 주신 분들께 그저 감사하다.


오며 가며 ‘아프리카 사람들은 외국인이 무슨 ATM인 줄 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돈을 잘 안 갚는다’ 등의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데, 물론 나도 가끔 짜증나는 일을 겪기도 하고, 이상하다 느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오가와 사야카가 쓴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를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탄자니아와 르완다 사람들의 경제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책표지 ©인터넷교보문고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その日暮らしの人類學”(하루살이의 인류학)이다. 탄자니아 북서부 빅토리아 호수 연안 도시 므완자(Mwanza)에서 2001년부터 15년 동안 영세 상인의 장사 관행, 상업 활동, 사회적 관계를 조사한 저자가 쓴 책이라 현장감 있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인류학 책이라서 이론적인 내용도 꽤 나온다. 나는 이론 부분이 너무 어렵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본 탄자니아 사회는 어땠을지 너무 궁금해서 이론 부분은 많이 건너뛰고 사례를 주로 읽었다. 저자는 연구를 위해 므완자에서 헌 옷 행상을 직접 하기도 했다는데, 십 년도 더 전에 므완자에서 헌 옷을 파는 일본인이라니! 저자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책의 서론에 나오듯, 이 책은 “Living for Today, 즉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를 논함으로써 우리 삶의 방식과 우리가 존재하는 사회를 되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과 정규직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소득 수준도 낮은 탄자니아에서 사람들이 그날그날 다른 일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도 살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라면 그런 불안정한 삶이 주는 불안정한 수입보다, 그런 불안정함 그 자체에 질식했을 것이다.


탄자니아에서는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할까? 저자는 그들이 스스로 그런 삶을 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순리에 따라 유유자적하게 인생을 보내면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주술이나 초자연적 힘을 빌려 곤경에서 빠져”나오기도 하지만, “운 좋게 일자리를 찾더라도 비정규직이 많고 설령 정규직으로 고용되어도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보장 없이 해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에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고, 결국 여러 업종을 전전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자, 즉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직선적이고 균질한 시간이 미래를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는 근대적인 시간 개념과 다른 개념이 존재함을 강조하며 ‘선진국’의 생산 주의적이고 발전주의적 생활양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전자가 더 근본적인지 후자가 더 근본적인지는 조금 더 따져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다레살람의 카리아코 시장 ©우승훈


어쨌든, 오늘을 사는 삶을 기반으로 구성된 경제는 이제 주류 경제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또 다른 자본주의 경제로 대두되었다. 보통 “비공식”적이라 불리는 이 경제권은 전 세계 16 억 명의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 규모는 18 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비공식 경제권이 주류 경제와 반드시 대립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의 경험과 가장 관련이 컸던 부분은 “6장.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저자가 관찰한 바로는 도시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며 살아가는데,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난 이후 곤란한 일이 생기면 자신이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기보다는 자신의 사정을 호소해서 돈을 빌릴만한 사람에게 새로 돈을 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의 관찰이 정확하다면, 내가 사례 1에서 P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된다. 저자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나는 지금 정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뿐이다’라는 두 가지 상황이 필요할 뿐이라고 했다. 아직도 돈을 갚지 않은 P에게 두 가지 상황을 연기하며 호소해볼까 싶다. 이 사람들의 경향은 경향이고, 내 돈은 소중하니까.


이런 이야기들 외에도 중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풀뿌리 비공식 교역, 엠페사
[1] 의 등장과 빚 문화, 모조품과 복제품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모두 흥미롭다. 거대한 흐름에 대해 다루면서도, 현미경을 댄 듯한 사례와 분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런 자율적이며 자생적인 비공식 영역의 확장에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관념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허용하는 대안적인 사회와 경제의 가능성을 느낀다며 “이 책에서 다룬 오늘을 사는 삶의 방식이 새로운 인류 문명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바로 여성에 대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지속하려면 ‘사회자본’[2] 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본의 확보에 불리한 사람들, 예를 들어 소수민족이나, 여성, 노인, 장애인 등에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은 어떨까?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탄자니아와 같은 곳에서 여성의 사회자본은 남성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은 자율이나 자생과 거리가 먼, 훨씬 가혹한 형태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탄자니아의 비공식 경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 만들어내는 경제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비공식성’일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비공식 경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 11월, 8년 만에 탄자니아 통계청(Bureau of Statistics)은 ‘통합 노동력 조사(Integrated Labour Force Survey – ILFS)’를 발표했다. 이 발표로 지난번 발표되었던 2006년과 2015년에 발표된 2014년의 노동 현황, 즉 8년 동안 탄자니아 노동 현황이 얼마나 변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월 수입은 임금노동자들의 경우 월평균 308,075 탄자니아 실링(우리 돈 약 16만원)으로 조사되었고, 이 수치는 2006년보다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탄자니아의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종은 농업(66.3%)인 것으로 나타났고, 그다음으로 많이 종사하는 비공식 부문(informal sector)[3]은 250만 명이나 증가하여 총 430명이 종사 중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21.6%이다. 이러한 비공식 부문 노동자 숫자의 급증에는 여성 노동자의 증가가 한몫하고 있다. 2006년 75만명으로 조사되었던 비공식 부문 의 여성 노동자는 2014년 220만 명까지 증가했다.


통계는 탄자니아 노동자들의 월수입도 늘었고, 실업률도 줄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숫자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노동자들이 얼마나 존중 받는 사회인지 여부이다. 특히 비공식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조건 아래서 일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야카의 책은 비공식 영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삶의 질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하고 있지 않아 조금 아쉽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9-28

 

작성: 우승훈 지구촌나눔운동 르완다사업소 PM / woo.seunghoon2@gmail.com




[1] 모바일 금융의 일종인 엠페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바일 뱅킹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엠페사는 은행을 전혀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화번호가 계좌번호가 되고, 통신사로부터 허가를 받은 에이전트가 창구가 된다. 핸드폰이 아무리 구형이라도 문자기반 서비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용 가능하다. 엠페사 같은 형태의 모바일 금융 서비스는 케냐 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널리 서비스되고 있다.


[2]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Bourdieu(1986)에 따르면, 사회자본이란 연결망과 신뢰 구축을 통해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얻을 수 있는 실제적 자원이나 잠재적 자원을 일컫는다.


[3] 탄자니아의 통계청에서 사용하는 ‘비공식 부문’의 정의는 1993년 국제노동통계인회의(15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Labour Statisticians)의 정의에 따른다. 비공식 부문은 가족 사업체나 가족 소유의 비인가 사업체들을 포함한다. 비공식 부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가족: 보고서에 따르면, 1명 혹은 복수의 사람들이 같이 살고, 같이 먹으며, 같은 주거공간을 공유하면, 그 집단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남편, 부인, 그리고 자녀로 구성되지만, 이 외에도 같이 살고, 같이 밥을 먹는 친척, 식모,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가족 구성원으로 본다.
-비공식 부문의 사업체들은 가정과 분리된 별도의 법인이 아니거나 가족 구성원들이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서로 다른 가정들 사이의 비인가 협력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정부에서 정하는 특정한 법률 등에 등록되지 않았고, 그 종사자들 또한 등록되지 않았다,
-이들이 만드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전체 혹은 최소한 일부가 판매나 교환을 위한 것이다.
-종사자는 5명 이하이다.
-비 농업분야에 포함되어 있다. 농업 부문의 2차 비 농업활동도 포함된다.
-비공식 부문의 확장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노동인구 중 6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농업 외 분야의 70%는 이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