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가상대담] 3인의 사상가, 발전과 교육을 말하다 (1편)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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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본 원고는 2019년 7월, 국제개발협력학회의 국문학술지인 「국제개발협력연구」11권 2호에 실린 ‘교육의 눈으로 발전을 보다: 센, 굴렛, 프레이리를 중심으로(Examining Development through the Lens of Education : Focusing on Sen, Goulet, and Freire)’ 논문(정용시 저) 을 재구성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윤리’의 문제에 주목하여 센, 굴렛, 프레이리의 주요 저술 및 문헌들을 토대로 ‘발전과 교육’을 논하는 내용들을 저자가 직접 가상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해 쉽고 재미있는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봅니다.

대담순서

      [1편]

     1. 만남 

     2. 무엇이 문제인가

     3.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2편]

     4. 발전,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5. 어떻게 변화를 만들 것인가

     6.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교육


[가상대담] 3인의 사상가, 발전과 교육을 말하다 (1편)


발전과 교육이 상호 조응하는 개념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발전 목표와 국가 발전 계획의 주요 요소로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교육을 ‘발전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각 국 정부와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관점을 대변한다. 그러나 계획이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야기하는 교육만의 불확정성은 교육의 도구적 관점을 가정하고 있는 정책입안자나 개발 활동가들을 언제나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발전과 교육간 상호 관계를 밝히고 이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하는 것은 발전 패러다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티아 센(Amartya Sen, 1933- ),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 데니스 굴렛(Denis Goulet, 1931-2006)은 발전(development) 개념을 각자의 영역인 경제학, 교육학, 개발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조명한 거장들이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에서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 3인의 학자들이 발전에 대해 말하려 했던 바는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이들 3인의 사상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담을 나눈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발전과 교육의 변증법적 접근을 시도해 본다.


▲ ‘가상’대담에 참여한 3인의 학자들 : (왼쪽부터) 아마티아 센, 파울로 프레이리, 데니스 굴렛


1. 만남


굴렛: 센 교수님, 프레이리 교수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프레이리 교수님은 기니비사우 프로젝트 관련해서 연락을 나누고는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 저도 굴렛 교수님께 아주 큰 영감을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제 책 『윤리학과 경제학』이 사실 굴렛 교수님께 영향을 받아 쓰게 된 책이거든요.


프레이리: 오랜만입니다, 굴렛 교수님. 제가 『개발의 윤리』 서문을 기고해드린 이후로 이렇게 학문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요.


굴렛: 듣고 보니 우리 세 명 모두 특별한 인연이 있네요. 연구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말씀 나온 김에 문제의식부터 각자 나누어보기로 할까요?


2. 무엇이 문제인가


굴렛: 요즘 세상은 제가 젊었을 때 보다 변하는 속도가 무척 빨라졌습니다. 저는 연구자이다 보니 젊었을 때 어렵게 논문 썼던 기억을 종종 떠올리는데요. 예전엔 학회지에 논문 한편 제출하려면 자료를 찾는 데만 해도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요즘엔 그냥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전 세계 도서관이 다 연결되어 있고 구글을 통해 언제든 원하는 자료를 검색할 수도 있잖아요. 오히려 정보가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떤 자료가 내가 찾는 자료인지 검토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됐어요. 심지어 요즘엔 ‘거짓 뉴스’라는 신조어도 있더군요. 이런 현상을 세계적으로 확대해 보면 인적 만남의 빈도와 물적 교류의 속도가 크게 증가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말도 되겠지요. 예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렇게 기술의 발달과 정보의 홍수, 그리고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증대되는 시대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프레이리: 저도 굴렛 교수님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정보와 요소들로 구성되고 있는 만큼 그 안의 억압 구조도 예전보다 훨씬 미시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거든요. 특히 냉전 체제 이후에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어온 신자유주의는 누구나 부유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는 물질적 부를 대가로 우리 모두 소비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지요. 저는 이렇게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억압 구조를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 두 분 모두 저와 비슷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계셔서 반갑습니다. 저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기존 경제학의 모순에 큰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요. 기존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최소한의 고통과 최대한의 쾌락, 즉 효용의 극대화를 위해 행동하는 이성적이며 차가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현실에서 그런 일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일어나지요. 인간은 그런 효용함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때로는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존재이지요. 저는 이런 왜곡된 인식이 우리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손’만 신봉해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사실 ‘보이지 않는 가슴’을 가진 인간을 먼저 상정하고 나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물질적 효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기존의 경제학을 어떻게 정의와 윤리가 존재하는 인간적인 경제학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연구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3.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굴렛: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인간, 가치, 윤리라는 핵심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핵심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들인데요. 저는 우리의 문제의식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민했던 ‘선한 삶(good life)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치란 선(good)을 의미하고, 인간은 삶을 사는 존재이며, 윤리란 결국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앞서 말씀 드린 기술 발달에 대한 제 생각을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면, 저는 오래 전부터 기술 발달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해왔는데요. 제 생각에 기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자원이 될 수도 있고, 강력한 사회 통제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사회 변화를 위한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 주의 깊게 봐야 할 문제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소외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이 자본을 만나면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건 사실이지만, 물질적 부가 반드시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해준 건 아니거든요.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라는 유행어처럼, 오히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길 원하게 되었으니까요. 소유가 삶의 목적이 되고 나서부터 가난한 사람도 언젠가는 부유해질 수 있고, 저발전국도 열심히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선진국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환상을 생산하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계속 소외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존경하는 동료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 교수는 ‘가난 속의 소외’뿐만 아니라 ‘풍요 속의 소외’도 비인간화 현상으로 이야기 합니다. 결국 기술이 의미 있는 삶을 대체할 수는 없는 거죠.


: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기술이 곧 자본에 통제되기 시작했고, 여기에 약 1세기 후에 과학이 결합되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발달된 시장경제가 인간의 노동이나 자연의 일부인 토지처럼 시장 외부의 존재까지도 상품화하여 시장 영역으로 포획했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의 작동 기제가 인간의 일상과 자연까지도 통제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비인간적인 시장에 어떻게 인간적인 가치와 윤리를 불어 넣느냐는 것입니다.


프레이리: 두 분 교수님의 말씀에서 제가 인간화(humanization)를 주장하는 이유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저는 굴렛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 소외 현상이야말로 억압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세계의 변화에 따라 억압 기제는 계속 다양해지고 세밀해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발전을 명분으로 기술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치의 충돌에 주목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가치의 충돌을 조금 더 명확하게 풀어보면 ‘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충돌’이 아닐까 합니다. 가치를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세계와 환경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개인의 분명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주체로서 우리 인간의 소명이자,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굴렛: 동의합니다. 발전은 결국 어떤 사회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발전에서 그 인간적인 가치를 논의하는 과정이 발전의 윤리라고 생각하고요. 여기서 저는 프레이리 교수님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인데 이런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즉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 2편으로 이어집니다. (8/1,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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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다운로드 안내

1) 국제개발협력학회 홈페이지(www.kaidec.kr)

- 학회 정회원 가입 후(유료) 다운로드 가능

- 정회원 가입 링크 : https://www.kaidec.kr/contents/kr/about.htm?ch=6


2) 한국학술지인용색인 홈페이지(www.kci.go.kr) : 논문 초록 및 5페이지 미리보기 가능



기사 입력 일자 : 2019-07-30


작성 : 정용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전공 박사과정,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 / ysjung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