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8호] 누군가의 곁을 오랫동안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피다 운영위원 인터뷰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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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곁을 오랫동안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피다 운영위원 인터뷰


한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정받고 영향력이 커지는 성공적인 커리어의 완성인가. 혹은 그렇게 되기 까지 홀로 겪어야 하는 무수한 노력과 번민의 시간을 이야기 하는가. 전문가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버텨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이  점점 쉽지 않아지는 요즈음이다. 특히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해야 하는 국제 개발 협력의 영역에서, 개발의 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처 받은 사람들 옆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피다의 운영위원이자, 기업의 해외 인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민주연대의 나현필 사무국장을 만났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온 사람. 인터뷰라는 짧은 시간의 단면으로 누군가가 10여년간 겪어온 세월을 유추하는 것은 매우 가벼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단면에 박힌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쿵’ 하고 묵직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오직 그 느낌이 독자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며 최대한 가감 없이 그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그냥 하자’해서 시작했는데 길어졌어요.

 

-  국제민주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국제대학원을 다닐 때, 방학 때 인턴쉽을 하면 학점을 준다고 해서요. 학부 때 학생운동을 조금 했었기에 가능하면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었고, ‘국제’가 들어간 시민단체를 찾다 보니 국제민주연대를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자원활동을 하다가 2006년에 상근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별 고민 없이 ‘노느니 그냥 하자’ 해서 시작을 했는데, 이게 길어졌죠. 사회적으로 커리어가 쌓이면 다른 곳에 가기 어렵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어요. 특히 기업들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업에 지원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버티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매력 있었고, 이는  제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죠. 해외 출장이 많다 보니 부모님께 ‘우리 아들이 돈은 못 벌지만 뭔가 의미 있는 있을 하나보다’라는 인상을 심어드리기 충분했고요. 한편으론 해외에서 발생한 인권문제에 관여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해결이 쉽지가 않아 국내에서처럼 단기적 해결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았던 것도 계속 할 수 있었던 원인인 것 같아요.

 

-   국제민주연대는 어떠한 배경에서 설립되었고, 어떤 활동을 하나요?


-  1990년대 선배 활동가분들과 교수님들이 아시아 지역 회의를 갔는데 현지 활동가들이 한국 기업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고 해요. 그래서 참여연대 내에 국제 인권센터를 만들었고, 2000년에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국제 민주연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에 의해 피해를 입은 현지 주민들이 있으면, 이 사실에 대해 해당 기업과 현지 공관에 먼저 알려 해결을 촉구하고, 다음 단계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언론에 알립니다. 가능하다면 현지조사나 피해자들의 국내 초청을 통해서 보다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이용해서 기업에 진정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법 소송까지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한국 시민사회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죠. 정부나 국회에 구체적인 구제책이나 예방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이슈를 국내에 소개하고 연대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업과 관련된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개발의 문제, 그리고 해당 지역 정부의 거버넌스 문제까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ODA Watch와 만나게 되었고, 또 함께 교류하면서 활동을 넓혀갈 수 있었죠.


국제개발과 인권을 함께 다루는 단체가 많지 않다 보니 기관간의 연대활동도 활발히 진행중입니다.. 2008년부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공감, 어필 등 공익 법률 지원 기관 및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좋은기업센터, 민변 노동위원회가 함께하는 ‘기업 인권 네트워크’를 통해 10년정도 활동해 왔고, 사안에 따라 네트워크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OECD 가이드라인 관련 네트워크도 있고, 작년 7월에 있었던 라오스댐 사고 한국시민사회 대응 T/F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2003년부터 아시아에서 자본의 이동에 따른 권리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네트워크(ATNC)’ 가 만들어져서 공동 연구와 캠페인이 이루어 지고 있어요. 국제민주연대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내 자본 수출국이 대개 한, 중, 일인데 그래도 한국 시민단체가 그 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 그 역할이 중요합니다. 민주노총 국제위원회가 함께 하기도 했지만, 국제민주연대가 가장 지속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서 민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의류 봉제업의 인권 침해를 다루는 클린 클로스 캠페인, 앰네스티나 휴먼라이츠 워치 등 인권단체들과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남미 지역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문제가 발생하고 연락이 와서 연대를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  지난 10여년간 한국 기업의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계신데,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   인식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한국인 남성 관리자의 현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제보가 초창기보다 많이 줄었어요. 기업내 교육 등이 인식 개선에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지 법률을 지키고자 하는 경향도 강해졌는데, 사실 저희가 만들어 냈다기 보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컸죠. 바이어들이 이런 윤리적인 부분을 많이 요구하다보니,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기업으로 낙인 찍히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해외에서는 이렇게 국제 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오히려 국내에서는 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은 들어요. 장시간 노동, 성희롱, 비정규직 차별, 안전한 근로환경 등이 한국에서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요. '기업이 어떻게 인권을 존중하게 할 것인가' 라는 화두는 한국이냐 외국이냐라는 틀을 넘어서는 부분인 것 같아요.


▲ 미얀마 한국기업 건으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 하는 나현필 사무국장 ⓒ 국제민주연대 홈페이지 



나보다 능력 있는 분이 왔으면 훨씬 더 성과가 나지 않았을까요?

 

-    기관이나 개인 차원에서 느끼시는 도전 과제나 한계는 무엇인가요?

 

-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 어려워요. 언론에서 활동을 많이 조명하고 다뤄주지만 그것도 그때뿐인 것 같고, 시민들이 자기 문제로 인식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기관에서 누구를 돕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후원회원을 늘리는 게 쉽지 않아요. 피해자 중 특정 개인만 돕는 것도 그렇고, 단체 미션만으로 후원을 요청하기엔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200여분의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국제민주연대 활동을 지지해 주셔서 버텨왔는데, 점점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그냥 제가 버틸 수 있는 환경이 되어 버틴 것이지,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활동이 정체되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내가 빨리 그만 두고 더 능력 있는 분이 오면 훨씬 더 성과가 나지 않을까. 내가 만나는 노동자들과 현지 주민들의 삶에 대해 정말 진심을 다했나. 이런 부분에 반성이 많이 됩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곳이 많이 없어서, 한다는 것 만으로 인정해 주시는 부분이 있다 보니 스스로  더 혁신하거나 발전하지 못한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케이스만큼은 성공적으로 잘 해결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여전히 없거든요. 현지에서 피해자를 만날 때도 그 마음을 돌아와서도 유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일의 특성상 피해자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언어 장벽이 있어서 그것을 핑계로 안전하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기도 해요. 그만 둬야 할 때가 지난 것 같기도 하고요.

 

-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싶은 사례가 있지 않으셔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만큼 했다. 그래서 보람이 있었다든지.

 

-  필리핀에 있는 한국 의류회사의 노동자들을 돕고자 했던 적이 있어요. 합법적으로 노조를 설립했는데 회사는 인정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인데 용역을 불러 파업을 진압하고, 괴한들이 침입해서 농성장에 있는 조합원들을 끌어내 길에 버리고.. 너무 심각했어요. 국내에 피해자들을 모셔와서 한국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과 같이 집회도 크게 하고, OECD 가이드라인 한국 연락 사무소에 진정도 넣고,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이 정도면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본사가 다른 곳에 인수되면서 4~5년을 끈 싸움이 결국 성과 없이 끝났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거든요. 내가 충분히 할 바를 다 하면 된 것인지. 싸움을 위한 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노동자들과 충분히 동의가 되었나 싶기도 했고요. 보다 전략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보다 끈질겨야 했던 건 아닐까. 솔직히,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렇지 않나. 내가 당사자라면 그렇게 했을까.


 10년 넘게 했지만 성과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럼이 없이 핑계와 변명만 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피해자 분들이 그래도 고맙다고 이야기 해 주시는 게 서글픈 거에요. 너라도 없었으면 이야기 들어줄 사람도 없다, 한국 기업의 문제를 한국 사람이 와서 들어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하시는 게 슬퍼요. 좀더 역량을 강화해야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싶은데, 굉장히 오래된 숙제인데 잘 안되네요.

 

-  너무 많이 개인에게 탓을 돌리는 건 아닐까요? 공고한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인권이나 개발분야 처럼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고통 받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활동을 위해 시민사회가 해야 하는 몫을 다하지 못한 것도 있지 않은지요?

 

-  단체 차원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을 깊이 있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같아요. 항상 긴급한 현안들, 단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행정업무의 사이클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는 게 쉽기도 했어요. 물론 활동해 오면서 느끼는 보람도 있죠. 외국에서 함께 싸웠던 분들을 일이 년 만에 한번씩 보고 소통하는 것, 신문에 제가 활동했던 것이 보도되면 기쁘기도 하고요. 버티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선생님으로 불리고, 전문가 취급을 받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늘 경계하고 있어요. ‘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불려나가는 거지 잘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라고요. 나이가 들면 그런 유혹이 생기잖아요. 변화나 혁신 보다는 해 왔던 것만 활용하고 편하게 가려는 것이요. 저도 그런 것 같아서, 혁신은 못할 망정 전문가인체 하고 다니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다와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   피다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떠신가요,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  2017년에 피다 후원 주점에 갔다가 난생 처음 어떤 기관의 운영위원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감사했고, 멋모르고 수락 했죠. 그 후 피다의 중장기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 처음 갔는데, 너무 오래 회의를 하시는 거에요. 아 이건 아니구나, 잘못 걸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후 총회에 참가하며 두 번째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회원들의 토론을 보며 이 조직이 민주적이고 진지한 곳이구나, 이 사람들은 정말 피다를 사랑하는구나가 느껴졌어요. 사무국 실무자 분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 업무를 하는 것을 보면서도, 또 나를 많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피다’라는 한 단체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영광이기도 해요. 벌써 운영위원이 된지 일년이 되었고, 임기 중 절반을 보냈는데 여전히 배우는 입장이네요. 피다는 개발협력 부문에서 애드보커시 활동을 하는 유일한 단체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해 오던 고민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으면 해요. 이제 피다도 국제민주연대처럼 1인 사무국이 되는데 어떻게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활동가들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이 맞물리고요. 또 세월이 지나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의 양상도 달라질 텐데 그런 환경에서 지속가능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 나가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피움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바가 있으세요?

 

- 사실 피움 독자분들은 이미 너무 많은 부탁을 받고 사시는 분들인 것 같아서, 특별한 부탁은 없어요. 피다와 인연을 맺고 피움을 봐 주시는 분들이야말로 국제민주연대 활동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 많이 이해해 주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독자분들이 계시기에 그나마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해 상식에 기반한 여론들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견제와 감시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적잖이 당황하였다. 인터뷰 중반 쏟아져 나온 그의 날카로운 자기 비판에, 혹은 자괴감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 순간에. ‘최선을 다한 것 만으로 충분한 걸까.’ 싶은 날들이 있다. ‘내가 아니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싶어 작아지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성찰하는 자 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 그러한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를 통해 세상은 하나씩 매우 느린 걸음으로 변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더딤을 견디는 힘 또한 나현필 위원님을 포함한,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피다라는 공간이 더 반짝하고 빛나는 저녁이었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01-31


작성: 최진경 피움 편집위원,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사무국 사업팀장 / jkchoi6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