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0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바다와 아이들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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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피움 20호부터 <사진하는 공감아이> 하동훈 사진 치유자이자 곁지기 사진가의 정기 연재가 시작됩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품은 그의 사진과 글을 기대해주세요.


바다와 아이들


▲ 고요해진 바다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2018.10. 필리핀 바시아오 마을.  ©하동훈


코코넛 나뭇잎을 가르는 바람길을 따라 걷자, 불과 몇 발자국 전 흙길이었던 곳에 모래가 조금씩 섞이는 것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몇 걸음 더 가보니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해안선 저편에서 이제 막 물놀이를 나온 아이들 몇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연방 손을 흔들고, 벗어든 웃옷을 휘휘 돌리며 인사를 건네온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두 손을 들어 한참을 인사한다.


아이들은 해변가에서 점점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따금씩 멈추어서 아래로 물속을 보고는, 쪼그려 앉는다. 한 아이가 앉으면 다른 아이들도 합세했다가 다시 흩어진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가자는 아이, 다른 쪽에서 자기에게로 오라고 손짓하는 아이, 그 사이에서 양쪽을 번갈아 보는 아이가 있다. 한동안 서로 자기 쪽으로 오라며 기 싸움을 하더니, 마음이 맞춰졌는지 이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서로 눈을 맞추던 아이들은 차례로 살며시 앉더니,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흙을 파내며, 바위 이쪽저쪽을 들추어본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니 무엇인가 귀한 것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손에 무언가 하나씩 걸려 올라온다. 조개도 있고, 손보다 조금 큰 물고기도 있다.


5년 전 태풍 욜란다가 온 마을을 집어삼켰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은 이제 제법 마을도 정돈이 되고 자발적으로 대응훈련도 받아 태풍에 대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바다는 그리고 바람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한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태풍에 가족을 그리고 평화로움을 내어주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바다 곁에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지금은 마을과 바다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품어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이 큰마음으로 이 바다를 품고 살아갈 날이 올 거라는 생각에 아련한 마음이 들어, 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기사 입력 일자: 2019-07-16


사진&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gongam_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