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22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2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2019-12-18
조회수 4485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조현철 신부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 멸종 저항!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강력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대다수의 삶은 매우 ‘무사’하고 ‘태평’해 보인다. 거대한 환경재난의 쓰나미가 저 멀리서 밀려오고 있음에도 그것이 아직 우리의 영토에 직접적으로 다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 보면서도 우리가 소유한 것과 손에 잡은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우리의 환경적 책무, 특히 한국의 급속한 ‘발전’ 과정 속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만들어냈을 많은 종류의 ‘쓰레기’에 대한 성찰 없이는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할 수 있다. 우리의 발전을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발전을 기획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발전대안 피다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1]와 국제한국학선도센터[2]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강연 시리즈를 열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발전경험을 경제성장이나 소비주의의 눈, 즉 ‘돈’의 시각이 아닌 ‘사람’의 시각으로 성찰해보고자 하는 기획으로, 그동안 한국의 발전 속에서 잊혀지거나, 소외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눈으로 한국 발전경험을 되돌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현철 신부의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연은 ‘돈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이 아닌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을 통해 한국의 발전경험 속에서 환경의 의미와 위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조현철 신부는 현재 녹색연합 상임대표와 비정규노동자의집 (사)꿀잠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길 위의 성직자'로 불리는 조 신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들어가 소외당한 자들을 만나 사랑을 전하는 삶' 이라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삶의 지침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왔다. 특히, 쌍용 자동차/기륭 전자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원자력 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며 경남 고리부터 서울까지 이어진 탈핵 도보 행진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3보 1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미사 집전과 비정규직 법과 제도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에도 참여했다. 


강연을 시작하며 조현철 신부는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발전경험을 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명백히 낙제점(Fail)이라며, 이를 쓰레기로 인한 생태문제, 지속불가능성과 소비주의, 불의 라는 세 가지 이유를 통해 설명했다. 첫번째는 ‘쓰레기’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이후에는 어떤 형태든 ‘쓰레기’가 뒤따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고, 전기를 사용할 때도 화석연료나 핵연료의 찌꺼기나 남고, 자동차를 이용할 때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쓰레기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지구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이다. 분해되는데 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70억 인구의 몸무게만큼 나오고 있고, 고작 몇 년을 사용한 핵연료봉은 무려 십 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조현철 신부는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만년인데, 십 만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며, 그간 인류는 “말도 안되는 쓰레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 비판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위기의 문제도 심각하다. 앞으로 12년 정도 후부터는 기후가 걷잡을 수 없이 예측을 벗어나는 기후이탈, 기후붕괴의 문제가 나타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더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는 기세가 여전하다. 

조현철 신부는 이러한 모든 문제가 ‘발전의 문제’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발전은 지속불가능 하다고 강조했다. 조신부는 발전을 ‘경제성장’으로 정의한다면 이 발전의 한계는 자원의 한계에 이어 폐기물의 한계로 인해 오는 것이라 설명했다. 플라스틱, 핵폐기물, 온실가스 모두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며, 지금의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을 고집하는 한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성장이 종교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었다. 인간들은 인간을 위한 경제성장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은 발전을 덜해서 그렇다. 발전을 더 하면 해결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경제성장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힘을 가지게 되었고 당연히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는 소비주의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직결된다. 경제성장을 통해 생산을 증대해놓고 소비를 증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광고는 끊임없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품들’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 소비적 인간(homo consumus)을 재생산한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명제는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로 대체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마트가 우리의 성전이다. 마트를 거니는 것이 우리의 순례다”라는 말로 현대 소비주의를 묘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은 이 시대의 소비주의는 강박적이고 집착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신부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시대에 가장 큰 비극은 인간도 쓰고 버리는 지독한 소모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 했다. 돈을 들여 작업환경을 개선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보다 그 비용이 중요시되는 것, 계속해서 하청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환경문제가 결코 환경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으며 사회정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도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라며 하나의 문제로 보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찬미받으소서 139항). 환경문제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환경 훼손에 대한 책임과 피해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적게 쓴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 훼손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든 폭염이든 밖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그러하다. 


조신부는 “파괴된 환경이 발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가”를 주제로 3가지 메시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1.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라: 타이타닉이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는 타이타닉 리얼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암초를 더 이상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 에너지 ‘전환’ 담론도 태양력이든 수력이든 대안적 방식을 사용하되, 지금의 소비수준과 성장수준을 유지하려는 생각이라면 발전이데올로기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삶의 양식과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성장 자체가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약자가 짓밟히는 사회는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다. 

◆  2. 자연을 다르게 보라: 우리는 그동안 이 세계는 인간이 마구 가져다 쓰는 자원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무시해왔다. 자연은 자원이 아닌 인간 생존의 근거이므로 존중, 신중, 겸손, 자제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생태적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  3. ‘대안 발전’을 고민해라: 경제성장만이 발전이 아니다. 무조건적 성장이 아닌 절제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탈성장에 기초한 대안적 시각으로 경제성장이라는 발전론에 대항해야 한다. Develop의 어원은 Envelop(싸다)의 반대어로서 ‘싸여진 것을 펼친다’이다. 진정한 발전은 ‘자동사’로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꽃피는 것, 안에 있던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 나무가 성장하는 것이다. 현대의 발전은 ‘타동사’로서 마구잡이로 쓸모를 끌어내는 것이다. 나무를 잘라서 땔감으로 쓰는 것이 현대의 발전이지만, 이것이 나무의 발전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 경제는 성장이 아닌 ‘살림살이’로서, 한 가정(혹은 국가)의 구성원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희귀한 자원을 잘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는 가정, 국가의 맥락 안에 위치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의 3가지 경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조신부는 책임은 앞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지만 피해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게 되는 영화 <설국열차>와 같은 현실, 즉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계, 결국은 모두가 파국을 맞는 결론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은 있다며, 필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암울한 전망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행동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조신부는 <오래된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행복하지 않으면 발전이 아니다”라는, 발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말을 인용하며 근본적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떠한 삶이 좋은 삶인지,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 것인지 등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는 동안 살아야 하니까,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을 쓰레기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며 “세상은 암울하지만 개인의 삶을 추스르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변화는 성공을 통해서가 아닌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며 조그마한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현실적인 방편으로는 ‘덜 쓰는 것’ 그리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대한 덜 쓰고, 꼭 써야 하면 다시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연 참여자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강연을 듣고 나서 전기나 물을 쓸 때마다 더욱 죄책감이 느껴진다. 남이 쓸 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댐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그리고 지금도 입고 있는 한국과 많은 나라 주민들의 모습도 겹쳐진다. 내가 쓰는 이 한줌의 전기와 한줌의 맑은 물이 누군가의 피로 보이기도 하고, 어느 곳의 환경을 한 줌 재로 만든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은 우리의 소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나는 평생 옷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 각자가 ‘덜 쓰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본 강연은 아래 Youtube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_TgSGCFgf4 (돌깨TV)


기사 입력 일자 : 2019-12-18


작성: 강하니 발전대안 피다 사무국장 / haneekang@gmail.com



[1]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공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자!' 라는 모토로 한국의 발전경험이나 문화 등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며 새로운 한국학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학과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 

[2] 국제한국학선도센터는 한국과 세계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하고 필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서강대학교 교내 연구센터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7_Sogang_Global_Korean_Initiative.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