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20호] 피움 편집위와 함께 본 2019 난민영화제, “I hear you, 당신이 들려요.”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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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편집위와 함께 본 2019 난민영화제, 

“I hear you, 당신이 들려요.”


지난 6월 15일, 제 5회 난민영화제가 개최되었다. 한국 난민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가 주최하고, 공익법센터 어필(APIL)이 주관하여 열린 이 행사는 UN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을 기념하며 5년째 개최되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난민의 이야기를 보다 가깝게 접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영화 상영 뿐만아니라 관객들과의 대화(GV), 세계 음식 부스, 공연 및 단체별 전시 공간등이 다채롭게 운영된다. 


피움 편집위원들과 함께 찾은 행사장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각 국에서 한국으로 온 난민들의 가족과 자원봉사자, 관객들이 뒤섞여 흥겨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각 국의 음식, 복장, 음악과 춤을 통해 나타나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난민들이 우리 사회에 더해 줄 수 있는 다양성과 자유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예뻤고, 가족들은 따뜻했으며, 활동가들과 난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친밀감은 곁에서 보기에 참 좋았다. 

영화제 하루동안 상영된되는 영화 중, 우리가 선택한 것은 “Welcome to Germany” 라는 독일 영화였다. 2016년에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로 독일 사회가 어떻게 난민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영화제 및 영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 https://www.koreff.org/)

 

▲ 영화 'Welcome to Germany' 포스터  c.발전대안피다


독일과 한국의 다른 모습들 :난민에 대한 현황, 제도, 인식의 차이 등

독일의 중산층 가정이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을 초대해 함께 지낸다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란 부분은, 말 그대로 ‘설정’인 줄 알았던 일반가정에서의 난민들의 홈스테이가 독일에서는 실제로 정책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 최근 몇 년 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 중 하나이고,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독일 사회 안에서의 적응과 통합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실제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 꽤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일은 난민들의 거주시설을 총 3단계, 즉, 1단계 수용시설(reception facility), 2단계 전문수용시설(competent reception facility), 3단계 연결숙소(connection accomodation)로 구분한다. 이 중 지역정부가 숙소가 필요한 난민과 일반 가정을 매칭해주는 2단계 전문수용시설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사례가 영화에 반영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공식적인 거주시설로서 영종도에 위치한 ‘출입국 지원 센터’가 유일하다. 한 번에 82명 정도만이 수용 가능해 그 외의 난민들은 스스로 거주할 곳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작년 한국의 예멘 난민들에 대한 열렬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들과 비교해보면 독일 정부의 노력과 시민들의 정책 참여는 (독일에도 관대한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절로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 법무부가 발표한 ‘2018년 난민신청 및 처리현황’을 보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은 1만 6,713명(2018년 기준)이며 최초 난민신청을 받은 1994년 이래 역대 최다 규모라고 한다. 이 중 난민인정 심사가 완료된 사람은 3,879명이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144명(3.7%) 뿐이다. 반면 독일은 2015년 유럽의 대규모 난민 유입 사태 이후, 지난 3여년의 시간동안 135만명 이상의 난민을 유입했다. 그리고 난민 신청자 중 거부율은 약 50% 가량 정도라고 알려졌다. 세계 평균 난민 인정율이 29.8%임을 감안했을 때 독일의 난민 지위 부여는 특별하리만큼 높고, 한국은 부끄러울만큼 낮다.

 

독일의 난민에 대한 자세와 정책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정권 아래서 많은 독일인이 타국으로 망명했던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정치적 박해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을 스스로 부과하며 실행해온 것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정부의 노력이 과거와는 다른 한국이지만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도 함께 높아질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낯섦, 두려움, 그리고 혐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비로소 생겨날 수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난민 청년 디알로가 독일 중산층 가정 하트만 씨네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영화적으로 과장되어 있지만, 과장을 걷고 생각한다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일상적 광경이기도 하다. 하트만 씨 가족은 세상의 많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긴 하지만 이런저런 불만도 많은 가족인데, 여기에 상당히 다른 문화에서 살아 온 사람이 들어와 친구가 되면서 모두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들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이 가족이 디알로라는 개별적인 삶의 경험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남으로써, 난민들을 멀리에 두고 시혜적인 태도로만 대하거나 막연히 혐오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부인인 안젤리카가 난민 한 명을 집에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남편 리차드와 아들 필립은 난민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면서 그럴 수 없다고 반대하는데, 그 말도 이해가 되었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언어도 문화도 나와 다른 낯선 사람과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데는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낯섦과 두려움에서 한 걸음 내딛을 때 우리는 낯설게만 보였던 ‘한 사람’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 그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알고자 하는 생각 없이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대한다면 당연히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디알로에 관해 전혀 모르면서도 그를 하트만 씨 집에서 쫓아내려고 피켓을 들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 2019 난민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단체들의 부스 운영과 더불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준비되어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음.

c. 발전대안피다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영화제를 함께 준비하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해온 활동가들이 한국의 난민들의 삶과 법, 제도적 문제에 대해 정보와 의견을 나누었다. 문제의 심각성과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하던 활동가들의 마지막 발언은, 그러나 매우 단순한, 그리고 기본적인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난민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리고보니 이 문구는 이번 영화제의 주제이기도 했다. 이 말은 난민이라는 집단은 균일하지 않으며,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쉽게 편견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관계의 기초를 다시 강조하는 말이기도 했다. 매우 무겁고 커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우리 사회의 난민 문제도, 거기서 부터 풀려나가지 않을까. 열린 마음으로 묻고 있는 그대로 들어보자.


[부록-인상적이었던 장면]

최진경) “같은 꿈을 꾸다.”-하트만 여사가 어느날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집으로 쳐들어오는 악몽을 꾼다. 그 이야기를 디알로에게 했더니 그도 “나도 같은 꿈을 꾼다”고 한다. 그 장면에서 난민들이 사회의 위협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잘 비틀어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디알로는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닌, 하트만 여사와 똑같이 ‘두려워 하는’ 존재이고,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 이 점을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김은파) 하트만 씨 부부의 딸 소피는 30대 초반으로 이런저런 전공을 시도하다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소피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디알로가 질문하자 소피는 독일에서는 이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며 여성이 결혼과 육아보다 공부나 일을 우선해도 된다고 답을 했는데, 그렇다고 학업, 직업 모두에서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보니 이 대화 자체가 웃기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디알로라는 인물이 너무나 호감형이고 싹싹한 사람이어서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이랄 게 거의 없었는데, 이 장면이나 소피에게 아버지의 말을 따르라고 권하는 장면 정도에서 이들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 보여서 기억에 남았다.   


이재원) "아빠는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 영화 말미에 하트만 씨의 손자인 바스티가 워커홀릭 아버지인 필립에게 절규하며 말한다. 다른 상황이지만 주인공 디알로도 짧은 독일어로 자신의 상황을 대변하고 요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독일이란 나라는 그를 받아주긴 했으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는 없다. 그저 독일의 방식을 요구받으며 하는 수 없이 적응해 나간다. 바스티는 자신의 일상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 댁에 홈스테이를 하게 된 디알로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된다. 서툴지만 디알로가 난민으로 독일에 오기까지의 슬픈 사연을 서툴게라도 공감해주고 들어주고, 디알로 역시 바스티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주면서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오랜시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지냈지만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준 덕분에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오해, 편견들이 홈스테이 과정에서 점차 풀리게 되는 점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힘'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이고 기회가 되는지를 크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일자 : 2019-06-26



작성/사진 :

- 김은파(피움 편집위원)

-최진경(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GSEF 사무국 사업팀장·피움 편집위원), 

-이재원(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 pida10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