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9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함께, 다시 서기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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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하동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빠르다. 분주했던 하루를 마치고 마음 뉠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리는 저녁비가 그 걸음들을 더욱 재촉한다.


건장한 두 청년이 내 옆을 빗기어 지나간다. 분명 뛰지는 않았는데 휘익 바람을 일으킨다.  퇴근길이 얼마나 기다려졌으면 일할 때 입었던 조끼도 벗지 못하고 저리 바쁘게 가고 있을까?


아까 그 청년들이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을 늦추더니 한편에 서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질문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재촉하는 것 같은 강한 말투라서 살짝 거부감이 느껴진다. 청년의 말투와는 다르게 아저씨는 말을 계속 흐리며 문장 하나도 시원하게 끝맺지 못하고 청년들은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벽에 기댄 아저씨가 무언가 눈치를 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대등한 대화인 것 같지 않은 느낌이어서 다소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조금 거리를 두고 서서 모른 척하며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본다. 


듣고 보니, 청년들은 저녁은 드셨는지, 얼마나 여기에 계셨는지, 오늘 저녁에 어디로 이동하실 계획은 있으신지 안부를 물어보고 있었다. 언제든지 바로 옆에 있는 곳에 오셔서 식사도 챙기시고,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란다며, 주저하지 말고 꼭 오시라고 당부를 한다. 오시는 분마다 사정도 성향도 다 달라서 길게 계시는 분도, 생각보다 더 빨리 훌훌 털고 나가시는 분도 많다고 설명도 덧붙인다. 위험하게 밖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누워서 안전하게 주무시라고 힘을 주어 여러 번 말한다.


“사실 저번에 아저씨를 모시고 센터로 갔던 사람이 저였어요. 아저씨는 기억하지 못하셔도 저는 그날 아저씨 기억해요. 말씀드리면 더 난처해하실까봐 처음부터 말씀은 드리지 않았어요. 다시라도, 언제라도 오세요. 오셔서 식사하시고, 또 힘내서 나오세요.”


그제서야 노란색 조끼에 쓰여 있는 글씨가 내 눈으로 들어온다. 


‘다시 서기’, ‘지원’


도움을 주고 싶은 젊은 친구들의 열정 때문이었는지 자기도 모르게 조금 강하게 말하던 것이 나에겐 다소 불편하고 강압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어쩌면 아저씨의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을 덜어 주고, 단호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나는 단지 나에게 불편하게 들리던 그 말투 때문에 내용을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 주자며 멀찌감치 보낸 시간이 어느덧 1년 반이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가까이 지내지도 못하고, 떨어져 지내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사이로 지내는 데 무뎌지기도 한 것 같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함께하게’ 될까 궁금하기도, 고민되기도 하던 시기에 길 위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뜨끈함을 느꼈다.


다시 설 수 있다.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