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뷰[25호] 한국은 K-방역을 이용한 경제이익 추구자가 아닌,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연대자로 남아야 한다.

2020-10-16
조회수 3808

한국은 K-방역을 이용한 경제이익 추구자가 아닌,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연대자로 남아야 한다.



지난 2월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19가 짧은 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이 되었다. 인류 대다수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UN이 발간한 ‘2020년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행보고서’에서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보건·경제·사회적 위기가 우리의 삶과 생계를 위협하고”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라는 말처럼 코로나19는 보건 문제를 넘어 빈곤, 경제위기, 불평등, 식량위기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전 세계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촌 모든 구성원이 노력하고 있다. 선진국 정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도국을 돕기 위한 대규모 국제개발협력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정부와 시민사회도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개도국을 대상으로 예산을 확대하고, 새로운 사업 방식을 찾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성공한 코로나19 대응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이 국제개발협력에서 ‘K-방역’ 경험을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코로나19는 한국에게 ‘국제적 위상 제고’라는 생각치 못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평상시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하던 서구국가들이 좋은 성과를 낸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앞다투어 칭찬했다. 많은 국가들이 K-방역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문의했고 이 모습에 정부와 시민들은 자랑스러워 했다. 정부는 K-방역을 국제표준화 하는 작업을 추진했고, 많은 국가들의 방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타 선진국들보다 좋은 방역 성적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지나쳐서 인지, 한 때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방역의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차별과 혐오 등 인권문제도 제기 되었다.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한 우선적 마스크 지원 그리고 의료인력을 ‘갈아 넣는’ 방역 모델 등 민감한 사안도 있었다. 그러나 방역의 중요성 때문인지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부는 K-방역의 성공과 국제적 찬사에 한층 고무되었고, K-방역을 대외정책 확산의 지렛대로 삼았다. 여러 부처는 성공적인 K-방역으로 높아진 국가의 위상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책을 더욱 확대하고 강조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 몇몇 주요 부처들은 K-방역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합동 보도자료에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K-방역 모델의 국제표준화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전세계에 드높일 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세계시장 선점을 견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밝혔다. 같은 4월 경제부총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새 시장 개척과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 K-방역 모델을 경제협력 심화를 위한 자산으로 적극 활용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도출한 신북방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코로나 사태의 대응 경험을 보건의료 사절단 파견 및 의료인 연수 사업 등을 통해 공유하고 협력하여 ICT 기반의 보건의료협력을 증진하고 강화함으로써 국내 의료기관의 진출과 보건의료, 제약 및 의료기기 산업 진출의 기반이 조성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다. 성공적인 K-방역 경험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조는 효과적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개최된 제35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는 ‘코로나19 대응 ODA추진전략’과 ‘신남방·신북방정책 성과 도출을 위한 전략적ODA 활용방안’을 심의하고 통과했다. 다른 정책문서들과는 달리 이 문서들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국제개발협력, ODA(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원조는 역사적으로 국익추구의 수단이었다. 선진국들은 원조라는 이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식민 국가였던 신생독립국들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시키는데 필요한 자본을 제공했다. 어려운 국가들의 경제개발을 돕자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한 켠에는 경제적 종속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이러한 원조는 냉전시대 이데올로기 대결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이후 인간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국제개발협력은 여전히 국가의 이익추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오랜 기간 동안 보편적 인권 실현을 원조의 최고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집행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관료들에게 이런 주장은 이상주의자들의 한가로운 놀음으로 여겨진다. 현실주의자들은 개인이나 동질성이 강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윤리적 행위로서 나의 이익추구가 배제된 이타적 활동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단일 정부가 없는 현실 국제사회에서는 국가 중심의 냉철한 국익 추구만이 원조 정책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현실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이들에게 이타적 목표의 원조란 최소주의적으로만 행해져야 하는 국가의 부수적인 행위일 뿐이다. 인권과 인류애는 빛나는 악세사리가 되어, 최대의 경제적 이익 추구 기회를 엿보는 이들의 앞길을 다져주는 수단이 된다. 원조가 인류애의 실천이라 생각해온 현장의 노력은 차가운 경제적 국익 실현의 논리 아래 효과적 수단으로 퇴색된다. 이같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추구가 원조의 최대 가치이자 목표로 강조되고 여기에 비판적 성찰없는 사회구성원들의 암묵적 동의가 더해진다면,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그 사회의 정체성 형성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사회의 정체성은 그 국가의 국제개발협력 정책 방향과 성격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원조배분 결정에 있어 경제적 이익창출 가능성이 최고 우선순위가 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역사는 ‘어느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였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미국 자동차기업과 석유기업이 나치 독일의 전쟁 준비로 큰 돈을 번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전쟁은 패망한 일본에게 경제부흥의 기회였고, 베트남 전쟁은 한국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인류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코로나19 대유행도 누군가에게는 돈벌이 기회일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요?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는데 왜 주저해요?’ 냉정한 현실주의자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피다는 ‘한국사회에게 코로나19 사태는 과연 기회인가, 아니면 국제사회와 함께 해결해 나가야할 위기인가?’ ‘이 시점에서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한국정부는 K-방역의 성공을 한국의 경제적 이익에 매몰된 협소한 시각이 아닌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초국적 연대와 협력의 수단으로 연계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K-방역을 ‘해외 시장선점, 경제협력, 사업진출 기반조성의 도구’로 사용하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가난한 이웃집에 발생한 감염병 환자들을 돕겠다면서, 그들에게 물건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면 과연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 논리라면 ODA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코로나19 대응 지원 역시 한국 상품을 구매할 잠재력이 있는 국가에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가 아닌, 가장 협력이 필요한 국가를 우선시해야 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이 일상화되고, 모든 측면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코로나19 시대의 지구촌이다. 한국은 남의 어려움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국가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다. 한국은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의 진심 어린 연대자로 남아야 할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 2020-10-16



작성 :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 hanligh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