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뷰[24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힘으로 나아가자!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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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힘으로 나아가자!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위협하고 있다. 협력국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정부기관과 시민사회단체 인력이 철수하면서 많은 활동이 중단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기관과 단체의 현장 파견이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실직 위기에 놓였고, 개발 NGO에 대한 후원금이 줄어들어 소규모 단체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협력국 현지에 파견되어 있던 한국 활동가들이 귀국하면서, 단체 자체에 대한 현지 사회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현지 협력 기관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지가 큰 고민이다. ‘현장으로 출장을 갈 수 없는 상황’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종사자들이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현실이다. 


지금까지 당연시해온 국제개발협력의 방식만 불가능해진 것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개념 자체에도 위기를 가져왔다. 거침없이 추진되어온 ‘지구화’의 연결고리들이 일시에 끊어지고 각국의 식량 위기와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생존'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나 자신’, ‘우리 가족’, ‘우리 국민들’의 안위를 최우선시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쪼개어 남을 돕는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인종차별과 타자화, 배제가 전 세계에 걸쳐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각국 정부들의 자국 이기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ODA 재원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듯 국제개발협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발전 개념에 근거해서 우리의 국제개발협력을 성찰하고 어떤 새로운 국제개발협력을 이야기해야 할까? 이 시점에서 피다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협력국 현장의 힘이다. 한국인 직원과 활동가, 봉사단이 철수하고 상당 기간 외국인 입국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협력국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현지 지부의 직원, 협력단체, 주민조직, 활동가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철수한 한국인 직원의 빈자리를 현지 지부 직원들이 채워 프로젝트를 계속해 나가는 사례도 있다. 현지 시민단체나 주민 조직을 통해 사업활동이 이루어지던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 각 현장에 얼마만큼의 권한이 부여되고, 현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되었는지에 따라 코로나 사태의 영향은 달랐다. 이에 따라 코로나로 인해 현지 지부를 현지인으로 구성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위기를 현장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지역의 위기를 연대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지역주민들의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 태국에서는 봉쇄정책으로 인해 생계에 타격을 입은 도시 빈민들을 위해 농촌의 농민들이 농산물을 수도권 지역으로 가져와 나누었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자체 모금 활동을 통해 쌀을 구매해 취약계층에 전달했다. 미얀마 청년들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로 소독제와 마스크를 만들고 방역 적정기술을 익혀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협력국 지역주민들의 연대 사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개발협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온 국제개발협력의 방식과 이를 통해 우리가 추구해온 발전의 내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의 국제개발협력은 지구적 전염병 유행 앞에 왜 이렇게 무력한가? 우리의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은 과연 올바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추구할 발전과 국제개발협력은 어떤 것인가? 이처럼 코로나 사태는 국제개발협력의 중차대한 위기인 동시에 우리의 국제개발협력이 협력국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발전을 돕는 방식으로 수행됐는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발전’ 개념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식민주의가 가져온 발전이라는 신개념은 식민정부가 ‘후진적’ 조선인이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조선의 근대화를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식민)정부의 주도하에 자본주의 산업화를 추구하여 근대화를 이루는 이 발전 개념은 이후 한국 발전의 뿌리가 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펼쳐진 냉전 시기에, 발전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의미했다. 발전을 이루는 방식은 국가주도의 산업화였다. 이렇게 정의된 발전이라는 지상과제 아래, 환경파괴, 노동착취, 젠더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체 등은 선진국 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겨졌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소위 ‘한국형 발전모델’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한국이 ODA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성공한 한국의 발전 경험을 수출하자’ ‘개도국도 한국을 따라 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서사에 기초한 한국형 원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무한시장경쟁이라는 조건 속에서 ODA는 종종 한국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ODA는 글로벌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한국형 발전모델을 전파하고 구속성 원조를 통해 한국기업의 개도국 진출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의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담론이 널리 퍼졌다. 자원확보를 위한 원조, 자본이 밑돈을 대고 공공이 개발사업을 수행하는 민관협력사업, 공공기금과 민간기금을 혼합한 복합금융 등이 이러한 담론 아래 난무하였다. 인도주의 원칙과 국제규범에 따라 협력국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ODA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상주의적 시민단체의 주장으로 치부되었고 언제나 주변에 머물렀다.


코로나 사태는 과연 발전이 무엇이며 발전의 주체가 누구냐는 근본적 질문을 수면에 떠오르게 했다. 한 번의 지구적 전염병 유행으로 인해 외부인이 협력국 발전의 주체일 수 없음이 드러났다. 한국인이 직접 가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채 버리기 전에 모두가 현장을 떠나야 했다. 지금의 이 위기는 분명 개인과 단체의 생존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협력국과 국제개발협력을 다루어 온 시각, 곧 협력의 개념, 연대의 개념, 발전의 개념을 되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없어서 사업을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발전의 중심축은 현지 사회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우리는 ‘지원’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개발협력은 각종 ODA 사업에 ‘K’를 붙여 한국 모델을 수출하는 것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현장의 힘에 기초하여 세워야 한다. 위기 이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국제개발협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발전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일방향적 국제개발협력 구도를 뒤집어, 그간 타자화되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보장하고, 기존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재편해야 한다. 코로나는 분명 국제개발협력의 위기이지만 이를 계기로 국제개발협력의 구조 자체를 뒤집는 시작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국제개발협력의 무게중심을 한국에서 협력국 현지로 옮겨, 새로운 관계와 활동의 형태를 만드는 시작점 말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우리의 손과 발이 묶여버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달려온 방식과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기사 입력 일자 : 2020-07-21


작성 :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회 / pida10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