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9호] 시민, 감시(監視)를 넘어 감시(感灑)로 -제1회 피다데이: 알아두면 쓸모있는 생생한 감시단 이야기-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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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감시(監視)를 넘어 감시(感灑)로
-제1회 피다데이: 알아두면 쓸모있는 생생한 감시단 이야기-


[편집자 주발전대안 피다가 첫 번째 '피다데이'의 문을 열었습니다피다데이는 다양한 발전’ 문제와 관련해 누구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으로주제와 형식을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자리인데요1회 피다데이에서는 발전대안 피다가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시민현장감시단에 참여한 시민들이 경험과 고민들을 진솔하게 나누었습니다앞으로 피다데이를 통해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갈지 기대해주세요


▲ 제1회 피다데이 참석자들과의 대화 ⓒ발전대안 피다


가방 속에 정신없이 짐을 쑤셔 넣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는 선배들의 물음에 “아, 시민들 이야기. 개발협력 시민들 이야기 들으러 간다니까요.”하고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제1회 피다데이로 열린 ‘알아두면 쓸모있는 생생한 감시단 이야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개발협력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올해 발전대안 피다의 네팔 시민현장감시단에 합류한 필자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민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직 낯선 개발협력 분야에서 전문가도 아니고, 현장 담당자도 아닌 ‘시민’들에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지난 7월 14일 금요일, 시청역 부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는 그 이야기를 들려줄 평범한 시민들이 모였다.
 
발전대안 피다의 ‘시민현장감시단’을 태운 비행기는 지난 2015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2016년 르완다를 들러 올 2017년에는 네팔을 방문하게 된다. 시민현장감시단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이 개발협력 현장을 방문해 감시(監視), 즉 보는 것이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ODA)와 NGO들의 기부금이 사용되는 개발도상국을 시민들이 직접 방문하여 조사하는 시민사회 활동이다.
 
이번 ‘제1회 피다데이’는 지난 시민현장감시단의 보고회들과 사뭇 다른 느낌의 시간이었다. 기존 시민현장감시단 결과보고회가 활동내용에 더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면, 이번 피다데이는 감시단의 꽃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덕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인생의 고민을 나누듯 웃음과 진솔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시민현장감시단은 ‘시민’이 간다. 즉,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시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것이다. 전문가도, 사업 담당자도 아닌 일반 시민, 지금도 내 곁을 스쳐가는 이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담긴 개발협력은 어떠한 것일까. 각 발표자가 경험한 시민현장감시단을 통해 피다데이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시민, 개발협력을 만나다

“댐 건설로 인해 주민들이 이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주에 따른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새로 이주한 지역에 주거환경이 이전보다 열악해진 경우가 많았다. 접근성 부족으로 일자리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고, 과연 이들의 삶의 질이 개발을 통해 개선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오랜 기간 주민운동가로 활동한 유영우 단원은 국내의 개발 사업에서 느꼈던 위와 같은 상심을 캄보디아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했다. EDCF 주도로 캄보디아에서 시행된 몽콜보레이댐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우리나라에서 자행되었던, 개발 이익에 치우진 개발 사업이 대부분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우리네 삶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ODA 사업이 우리나라의 개발에 대한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시민으로서 그가 만났던 개발협력의 현장이다.

유영우 단원은 감시단 활동으로 발전대안 피다를 만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시민현장감시단을 통해 만난 개발협력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개발협력 전문가가 아닌 시민의 눈으로 개발협력 현장을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와 닮아있는가를 생생히 드러낸다. 우리가 발전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삶의 존엄성이 우리의 존엄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따라서 발전을 위한 우리의 고민이 그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 캄보디아 시민현장감시단에 참여한 유영우 단원(왼쪽)과 이정민 단원(오른쪽) ⓒ발전대안 피다


시민, 친구를 만나다

이정민 단원의 20대는 해외원조활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해외아동을 위한 일대일 결연 후원을 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연간 행사처럼 아기들을 위한 털모자를 떠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하지만 따뜻한 기부활동이다. 그런데, 피다의 전신인 ODA Watch를 만나면서 그녀의 따뜻함에 변화가 생겼다. OWL(현재 ‘피움’) 기사를 통해 이전활동들에 대한 회의감과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 활동들이 정말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개발협력 활동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나게 되었다.

캄보디아 시민들에게 식수환경 개선을 위해 만든 한 단체의 모금 영상을 상영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채 알아차리지 못했던 장면들을 지적하며 “현재의 환경과 다르다”, “일부 지역만 그런 것인데 캄보디아 전체로 일반화된 것 같다”, “NGO들이 조사할 때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정민 단원의 질문도, 캄보디아 주민들의 대답도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거나 높은 학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가장 생생하고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었다.
 
이정민 단원은 캄보디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인간으로 현장의 주민을 만난다는 것이 시민현장감시단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현장으로 떠나기 전 사전학습으로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시민과 시민의 만남이 있었다. 현장에 사는 친구가 내게 전해준 이야기를 한국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ODA와 개발협력 분야를 현지에 두고 온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개발협력은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정민 단원의 그 따뜻한 나눔들은 사라지지 않고 발전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로 변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고심하지 않고 진행하는 수많은 개발협력 활동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옆구리를 찔러주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다. 내가 모를 때는 네가, 네가 모를 때는 내가 함께 고민해주는 것이 시민들의 연대인 것이다.
 

시민, 삶의 한 계단을 오르다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손수미 단원이 접했던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앙상한 뼈를 가진 아이들, 청결하지 못하고 질병이 만연한 대륙이었다. 그러나 르완다에는 그런 아프리카가 없었다. 그녀가 현장에서 만난 르완다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삶을 일궈가고 있었다. 수십 년을 쌓아왔던 편견들이 르완다에서의 일주일을 통해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그래서 시민감시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현장의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나누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되고, 영상과 책 등의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그들의 이미지와 현장의 삶이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발전의 첫 걸음이다. 발전은 인간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특정 이념에 의해, 서구 우월주의와 같은 구조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데서 시작할 수 있다. 손수미 단원은 르완다 시민현장감시단을 통해 그녀의 삶의 한 계단을 올랐다. 수십 년간 그녀가 살고 있던 고정관념의 계단에서 한 칸 올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르완다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다시 가고 싶다는 손수미 단원, 그녀는 발전의 한 계단을 올랐다.
 
한편, 그녀는 르완다의 냐마가베 농업 및 동물 자원 개발 사업장을 방문하며 큰 실망과 상심을 느꼈다. 뽕나무를 기르는 양잠 사업에 뽕잎은 온데간데 없고 황량한 모습만 남아있던 것이다.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충분한 설명이 부재했고, 그에 따른 교육이 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양잠 사업에서 뽕잎을 3분의 1정도 남겨놓고 따야하는데 이를 알지 못한 주민들이 뽕잎을 모두 따버려 사업이 진행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현장에 가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손수미 단원은 개인의 삶의 한 계단을 오르는 것뿐 아니라, 실제적인 사업의 감시 및 건설적인 비판 역시 시민 감시단의 주요한 역할이었다고 거듭 언급했다.


▲ 르완다 시민현장감시단에 참여한 이상혁 단원(왼쪽)과 손수미 단원(오른쪽) ⓒ발전대안 피다



시민, 주인이 되다


마지막 발표자였던 이상혁 시민은 대학시절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던 무렵, 르완다에 장기봉사자로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귀국 이후 시민현장감시단 활동을 통해 봉사단원이 아닌 시민의 시각으로 르완다를 바라보고 싶었다는 그는 감시단 활동에 이어 현재는 발전대안 피다의 홍보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피다가 이제는 그의 삶의 한 켠을 메우고 있는 주인공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상혁 단원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사업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사업의 긍정적인 면으로는 사업 진행기간 동안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실제로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주민 밀착형 사업이었기에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편 아쉬웠던 부분은 사업의 장기 계획이 부재하여 연간 사업들이 서로 연계되지 못했고, 따라서 매년 파견되는 개인 봉사단원의 역량에 크게 좌지우지 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감시단의 활동을 공유하며 거듭 ‘참여’를 강조했다. 개발협력사업이 기획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현장 주민들의 참여, ODA 예산이 적절히 필요한 곳에 잘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사업이 진행되고 또 마무리 된 이후에 개선과 평가를 위한 현장 주민들과 우리 시민들의 참여가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상혁 단원의 발표를 통해 그가 현장감시단의 일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ODA 사업의 당당한 주체로 성장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업은 비단 개발협력 전문가나 담당자의 몫이 아니라,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우리의 일인 것이다.
 


시민현장감시단의 감시(監視)에서 우리 모두의 감시(感灑)로


▲ 제1회 피다데이 참가자들과 함께 ⓒ발전대안 피다



네 명의 발표자를 포함한 약 스무명의 시민들이 함께한 첫 피다데이는 감시(監視)를 넘어선 감시(感灑)의 시간이었다. 피다데이를 표현하기 위해 ‘감시’라는 글자를 베풀 감(感)에 나눌 시(灑)로 바꿔보았다. 시민들이 개발협력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다른 시민들과 나누고 베푼다는 의미이다. 시민현장감시단 활동은 감시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우리 시민들과의 ‘감시(感灑)’로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가오는 8월 셋째주, 시민현장감시단의 마지막 비행기가 오른다. 네팔로 향하는 이 여정에는 어떤 고민들을 담아야 할까. ODA 사업을 진행하는 유상 및 무상 원조 기관을 방문하고, 두 세 개의 네팔 현지 NGO들을 방문한다. 한국의 원조 사업들이 과연 필요했는지, 도움이 되었는지, 또한 지속가능한지, 마지막으로 네팔의 불평등을 완화했는지를 기준으로 시민들에게 묻고, 듣고, 또 그들도 우리에게 묻고 들을 것이다.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들이 오히려 현지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존재가 존엄하기에 네팔 주민의 존재도 존엄하다는 개발협력의 관점이 현실에서 반영되고 있는지를 눈으로 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개발협력의 전문가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청년들이 살아가기 어렵다는 N포 세대의 한 일원으로, 아내의 사랑받는 남편으로, 여전히 연애가 고민인 평범한 여성으로 우리가 가진 정체성 모두를 들고 네팔의 시민들과 만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가진 활동기 이기 전에 서로에게 듣고 배우는, 목적성이 없어도 이미 존엄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피다데이의 부제는 ‘알아두면 쓸모있는 생생한 감시단 이야기’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효과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온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피다데이가 정말 쓸모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쓸모가 없으면 어떠하랴. 진정한 발전은 기존의 주류 사회가 말하는 ‘쓸모’에 대해 반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과연 경제적 효율성과 효과성이 높은 사업만이 쓸모있는 사업일까? 어쩌면 피다데이에서 들려준 우리 시민들의 민주적인 참여, 현장 주민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개발협력에서 가장 쓸모있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우리가 꿈꾸는 발전은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기존의 계단을 넘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개발협력에 관심이 있는 당신을 가두고 있는 계단은 무엇인가? 네팔시민현장감시단은 그 계단을 당신과 함께 넘어가고 싶다. 기대하시라.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히말라야의 진짜 시민들의 이야기를.



기사 입력 일자: 2017-07-31

작성: 김계신, 서울대학교 글로벌교육협력 전공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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