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포스트코로나 특집 (3)] 우승훈 회원 인터뷰 “개발협력에서의 해외 경험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노력을 해 보면 좋겠어요“

2021-12-24
조회수 2222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째.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지난 해, 피다는 재난 속에서도 대안을 찾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며 분투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들을 마련했었다. 상반기에는 피움 지면을 통해 <멈춘 시간 속에서 알게 된 것들 – 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기록> 시리즈를 연재했고, 하반기에는 온라인 토크콘서트 <코로나19 재난 속,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를 열었다. 그로부터도 1년이 또 지난 지금,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작년에 이야기를 나눠 주었던 활동가들을 한 명씩 다시 만나 보기로 했다.




포스트코로나 특집 (3)

“개발협력에서의 해외 경험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노력을 해 보면 좋겠어요“

- 발전대안 피다 우승훈 회원 인터뷰


📌 관련 기사 _ [피움 23호] 코로나19 범유행 2개월, 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의 기록 (2020.5.) (링크)


작년 ‘멈춘 시간 속에서 알게 된 것들 – 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기록’ 시리즈에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우승훈 활동가를 만났다. 비록 화상회의 프로그램 너머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팬데믹 시대에 다시 정의하는 ‘현장’과 한국 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역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목소리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개발협력 활동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그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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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승훈이고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웃음) 아프리카와 국제개발협력을 키워드로 글도 쓰고 가끔씩 강의도 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된 사업을 기획하거나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년 5월, 코로나 상황 속 개발협력 현장의 모습을 기록하셨던 글이 피움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벌써 그 글을 쓴 지 1년 반이나 되었네요. 작년에는 국제개발협력 NGO에 소속되어 아프리카의 각 사업소에서 코로나19 대응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지원했습니다. 사실 팬데믹 초기에는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많아 ‘일이 좀 줄어드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기존에 해 오던 사업을 팬데믹 상황에 맞게 바꾸고 코로나 대응 활동도 하다 보니 오히려 다른 해보다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 외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코로나 초기에 일이 줄어들 거라는 잘못된 전망을 하고 (웃음) 국개협UP 팀과 함께 서울시NPO지원센터의 활력향연 프로그램에 참가해 ’국제개발협력, 계속해 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8월 말에 5년 정도 일해 왔던 NGO에서 퇴사를 했고요. 그 이후로는 개인 신분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며 보내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글에서 ‘각자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그때 느끼셨던 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 부탁드려요.

작년에 그 글을 쓸 때는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각 나라의 정부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요. 부자인 나라는 보유한 자원으로 자국의 이익과 보호를 위한 대처를 먼저 시작하고,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은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잖아요. 또 당시엔 국내 개발협력 NGO들이 코로나 위기를 겪는 다른 남반구 국가들을 돕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어요. 우리도 어려운데 남을 돕느냐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동안 국제개발협력이란 이름으로 쌓아 왔던 협력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연대가 우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올 초부터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국커얼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기도 한데, 팬데믹 상황에서 연대 활동을 진행하는 것의 특수성이 있을까요? 팬데믹 전후로 연대 활동에 달라진 점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도 팬데믹 초기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어요. 현장에 출장도 가지 못하고 줌으로 회의하고요. 만약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국커얼 활동을 할 때 함께 모여 회의도 하고 집회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현장에 한국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되면서 현지 사람들의 힘으로 하는 일이 늘었잖아요. 제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이 뒤바뀐 상황이지만, ‘현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사실 별로 바뀐 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현장에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 왔고, 팬데믹으로 재원이 줄었더라도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연대 활동의 본질적인 부분은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 현장과 닿아 있는 일을 오랫동안 하시다가 이제는 기관을 떠나 자유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가고 계신데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셨나요?

제가 2016년 말에 입사를 했는데요. 석사를 막 마쳤던 상황이라 일할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기관에 파견 활동가 자리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두 가지의 큰 이유에서 파견 활동을 선택했어요. 첫 번째로는 현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어요. 마을이 변해 가는 모습, 사람들의 이야기, 얼굴 표정 같이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요. 두 번째로는 현지 사무소에 한국 사람이 없어도 사업이 진행되는 현지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2019년 초, 제가 있었던 르완다 사무소를 한국인 봉사자 2명을 제외하고 전원 현지인들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는데 사실 그때 이미 기관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본부에서 현지 사무소들을 지원하는 자리가 난 거예요. 제가 만들어 놓은 현지화 시스템이 더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기관에서 오래 일하게 되었죠. 앞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일이 많아져서 힘들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웃음)


기관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생각한 목표가 있으셨던 것처럼, 퇴사하면서도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활동 혹은 계획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평소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는 한국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해외 활동을 하면서 현지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현지에서도 사업 경험이 많은 사람, 현지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들을 다 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조직에 몸담았던 기간에는 ‘어떻게 하면 해외 사무소에서 현지 활동가들이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조직을 나온 지금은 ‘아프리카나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한국 사회에 전달하거나 적용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런 활동의 하나로 남반구에서 활동하고 공부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대규모 감염병이나 기후 위기처럼 지구촌 모두가 겪는 일과 앞으로 한국 사회가 겪을 일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감염병 위기는 한국에선 새롭게 직면한 낯선 일이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 등으로 이미 경험한 바가 있죠. 그때 그 나라들은 어떻게 대응했고, 국제개발 NGO와 국제사회는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했는지, 어떤 솔루션이 나왔는지 등을 한국의 상황과 연결해 보는 거예요.

또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왔을 때, 한국의 난민 관련 NGO들이 침묵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들이 개발협력이란 분야에 대해서 점점 모르게 되거나 외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발협력에서의 해외 경험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노력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지금은 한국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는데 ‘그 반대도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그게 한국 활동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가 가진 지식을 개발도상국에 전달하는 방식을 생각하는데 반대로 개발협력을 통해 경험하고 체득한 부분을 한국에 전달하고 적용한다는 관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기존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활동에 대한 영감을 찾기 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예비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해외의 젊은 활동가들이 쓴 글을 보면서 영감과 자극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세계를 보는 눈이 넓고 감수성이 좋은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또 의식적으로 글이나 뉴스 등의 자료를 남반구에서 보도하는 내용이나 남반구 출신 저자가 쓴 글로 읽으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하면 그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난 2년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언제 국경이 닫힐지 모른다는 것, 활동이 갑자기 중단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 개발협력 활동가로서 이런 예측 불가능성에 대응하는 방법이나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주신 예측 불가능성은 한국 활동가 입장에서 바라본 부분인 것 같아요. 파견을 나갔다 돌아와야 한다거나 출장을 갈 수 없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저는 ‘우리가 꼭 가야할까? 꼭 개입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장을 해외에 있는 현장으로만 축소하지 말고 한국에서도 개발협력 현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들 들어, 젠더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있잖아요. 한국에서 그 분야의 해외 사업을 하는 사무국도 현장이 될 수 있고요. 요즘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도 많기 때문에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코로나로 인해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에 속해 계시는 동안에도 앞서 말씀하신 국개협UP 활동을 하셨고, 자유활동가이신 지금은 글쓰기와 팟캐스트, 프로젝트 참여 등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계신데요. 코로나로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며 이런 활동을 진행해오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활동가로서 자신을 돌보는 방법 혹은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방법이 있으시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일단 조직 생활 외의 모든 활동은 제가 하고 싶을 때 합니다. (웃음)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해야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예외로 활력향연 연구는 정해진 일정이 있었고 팟캐스트는 월 1회 진행하고 있어요. 그 외에 글쓰기 같은 활동은 내킬 때 해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활동과 취미로 하는 활동을 구분해서 일로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또 제가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고 그 곳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즐거웠다 보니 보고 듣는 주변 환경을 아프리카처럼 만들 때가 있어요. 아프리카 커피를 마신다든지, 보고서를 쓸 때 아프리카 음악을 듣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스스로 ‘나는 아프리카맨이다!’ 하고 몰입하면서 지내는데요. 이렇게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지내다 보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좀 덜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일할 때는 사업이나 활동이 계획한 대로, 목표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진행하는데요. 대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로 기뻐하면서 동기부여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해외 사무소 직원이 교육 결과 보고서를 보내 왔는데 예전보다 컴퓨터 다루는 능력이 나아진 거예요. 그럼 정말 기뻐하고요. (웃음) 또 장애인 인권 관련 교육을 들은 한 시민이 은행에 갔다 장애인 경사로가 없는 걸 보고 항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너무 좋다!’ 생각하고. 이렇게 작은 변화에 집중합니다.


일을 하며 소소한 변화에 기뻐하는 것! 좋은 동기부여 방법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개발협력 분야 진출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 예비 활동가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대학생 분들도 만났었고 아프리카 관련 기자단 분들과도 진로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데 기회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또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요. 먼저 이 분야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지 절대로 예비 활동가분들의 역량이 낮아서 진입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기존에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단체나 기관에 나를 맞추거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능력을 쌓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른 관점에서 목소리를 높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런 활동들도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개발협력은 ‘변화’에 관련된 일이잖아요. 이런 일들은 청년 세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일에 관심이 있고 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이 기관을 찾았습니다’라고 스스로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자신을 의심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시면 좋겠어요.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고 앞으로 동료로 다 함께 재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화를 통해 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그의 애정과 쌓아온 경험, 그리고 고민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활동가로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이 인상 깊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개발협력과 우리의 연대의 본질을 바꾼 것은 아니기에 지금의 어려움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터뷰 진행/정리: 피움 기자단 2기

최하영 (zakhar102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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