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4호]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 제 1회 청년편 :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목소리를 듣다.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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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 제 1회 청년편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목소리를 듣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목소리를 듣다.


지난 5월 24일, 늦은 저녁 7시 신촌 르호봇 G캠퍼스 메인홀에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 제1회 청년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2016년 10월, 사람과 삶을 꽃피우기 위한 절실함에서 기존의 ODA Watch에서 새롭게 태어난 발전대안 피다가 시민들과 함께 진정한 발전의 의미를 나누고자 준비한 행사였다. 발전대안 피다는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와 포괄적 인권신장을 위해 추진해 온 한국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성장’하기보다 ‘소모’되고 ‘소외’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참여하는 주체들의 성장이 되어야 함에도, 여전히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구화되고 존재의 가치가 위태로운 주체들이 많다. 이에 발전대안 피다는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이라는 주제로 올 한해 10회에 걸쳐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잘 들리지 않아 소외되고 묻히기 쉬운 목소리를 듣는 것은 공통의 경험을 일깨워 연대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에 피다가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다.


『프레카리아트(The Precariat)』(2011)의 저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불안정한 삶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계급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
[1]로 정의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us)’을 뜻하는 형용사와 그 어근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조합한 신조어이다. 가이 스탠딩에 따르면, 프레카리아트란 불안정한 고용 형태나 임금 수준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생존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가장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안의 프레카리아트는 누구일까? 바로 ‘해외봉사단원’과 ‘ODA YP(Young Professional, 이하 YP)’라 불리며 국내외 현장을 채우고 있는 청년들일 것이다. 이 분야는 이들의 수많은 헌신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공은 간과된 채 부족한 처우와 열악한 근무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청년은 ‘일’자리가 아닌 ‘삶’의 자리를 원한다.


청년 실업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름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업무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2018년 3월 15일에는 대통령 주재 청년 일자리 대책 보고대회 겸 5차 일자리 위원회를 개최하여 청년 일자리 대책을 최종 확정 발표하였다. 이날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에는 ‘새로운 취업기회 창출’의 일환으로 1년 이상의 개도국 장기봉사단 확대가 포함되었으며 세부 추진방안에는 봉사경험과 취업을 연계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기조 아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지난 4월 5일 ‘KOICA 일자리위원회’를 발족하고 올해 봉사단원과 ODA YP, 봉사단 관리자와 다자협력전문가(KMCO) 등을 합쳐 총 5천 248명을 해외에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경력 사다리 모델을 제시해 ODA 생태계 활성화와 인적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2]


그러나 경력 사다리 모델에서 제시한 일자리는 적게는 7개월, 최대 2년 단위의 계약직이라는 점에서 청년 실업률 해소의 근본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일시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 경력을 쌓는 디딤돌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는 대다수의 청년들을 계속해서 단기 계약직 신분으로 남아 있게 할 뿐이다. 단기적인 ‘일’자리가 제공된다 하여 청년들의 ‘삶’의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의 삶에 대한 총체적 고찰 없이 이들의 불안정함을 단순히 고용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안정적 삶’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분야의 청년들에게 주어진 해외봉사와 ODA YP라는 선택지는 그들의 삶을 위한 대안이 되고 있을까?


KOICA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49개국에 1,520명의 봉사단원과 ODA YP가 파견되어 있다.[3] NGO 봉사단원까지 합하면 연간 2천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더 많은 청년을 해외로 파견해야 한다는 정책 결정자의 목소리만 있었을 뿐, 해외봉사와 ODA YP를 경험한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볼 자리가 없었다. 이에 발전대안 피다는 전 KOICA 봉사단원, 전 NGO 봉사단원, 전 ODA YP(국내 NGO)를 초대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 제 1회 청년편’에서 발언 중인 패널들의 모습 ⓒ 발전대안 피다


“낯선 땅에 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익숙하지도 않은 문화 속에 홀로 있는 나 자신을 알고 싶었어요.”
“돈만 버는 것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뭔가 의미 있는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해외봉사와 ODA YP 파견 경험이 있는 20대 전/현직 활동가들과 파견 단체 담당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패널들에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발을 딛게 된 이유에 대해 질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위와 같았다. 패널들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대개 ‘낯선 곳에서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막상 파견된 곳에서 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전 KOICA 봉사단원으로 토크 콘서트에 참여한 패널은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이집트의 한 대학에 한국어 교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정작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적어 ‘내가 정말 이곳에 필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을 떨치기 위해 주어진 업무 외의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냄으로써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NGO 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 파견되었던 한 패널은 현지에서 파견 기관의 이익이나 관례가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봉사단원은 그저 정해진 기간을 채우고 떠나는 ‘내던져진’ 존재로 느꼈음을 고백했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외지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해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여성 봉사자를 파견하기에 앞서,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기관의 고려가 부족했던 까닭이다.


이렇듯 현재 KOICA와 NGO의 봉사단 파견은 기꺼이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투자해 봉사하고자 하는 청년을 적합한 현장에 파견하기보다는 사전 수요조사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장에 내던지고 있다. 청년들은 가장 기본적인 직무와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부단히 애쓰지 않으면 ‘보람’있는 일을 하기 어려운 현장에 놓여 있다. 그 곳에서 청년들은 ‘내 것을 내어 남을 돕는’ 숭고한 봉사 정신보다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찾고 살아남으려는 생존 정신만을 학습할 뿐이다.



‘소모품’이 아닌, 현장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청년.


“청년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자 파견된 존재임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는, 세대가 다른 동료로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업무에 대한 조언이나 배움을 줄 선배가 없다는 것이 가장 막막했어요.”


KOICA와 NGO 소속 봉사단원의 경우, 현지에서 봉사단원의 생활을 안내하는 관리자(코디네이터)가 있지만 ODA YP로 국내 NGO에 파견될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국내 한 NGO에 ODA YP로 파견된 경험이 있는 패널은 인턴으로 파견되었으나 현장에서 간사급 실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업무와 관련하여 조언을 해줄 선배조차 없었다. KOICA에서 YP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업무에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들 위주의 당일 혹은 이틀짜리 교육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파견 기관은 교육을 필수가 아닌 선택 과정으로 개설해 놓았다. 인턴은 일하는 사람이자 일을 통해 조직과 문화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파견된 현장에서는 자신이 그저 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충당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는 발언도 있었다.


현지에 관리자가 상주하는 봉사단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봉사단원 관리자는 봉사단원들의 생활을 규제하고 감독할 뿐,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은 미미했다. 봉사단원이 파견된 현지에서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말썽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전 KOICA 봉사단원인 한 패널은 현장의 수요가 크지 않은 업무를 하면서 ‘봉사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힘겨웠음을 고백했다. 더불어 봉사단 관리자가 단순 관리 업무만 할 것이 아니라 봉사단원을 존중하고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짧은 계약 기간, 열악한 환경, 최저 임금수준의 생활 보조금보다 청년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진척시키기 위해 선택한 길이 보아하니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정책의 소모품으로 전락했음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박탈감에 청년들은 좌절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단원과 ODA YP 자리는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이러한 업무를 맡아 수행하면서 청년이 스스로의 가치와 역량을 발견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부된다. 이에 배움과 성장을 찾아 온 청년은 불안에 빠져 불편할 뿐이다.



청년의 성장과 배움을 존중하는 문화가 꽃피기 바라며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어 전하고자 했던 것은 해외봉사단, ODA YP 정책에 대한 공허한 질타가 아니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 하나, 청년의 배움과 성장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해외봉사와 ODA YP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소를 위한 해결 방안으로 적극 권장되고 있다. 국내 취업이 어렵다고 해서 이들을 무조건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 실질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을까? 청년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다. 이 시대의 불안한 청년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이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삶’의 자리가 절실하다. 그러나 청년을 또 다른 생존경쟁으로 내모는 지금의 청년 정책은 청년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시각만이 있을 뿐, ‘청년’의 목소리가 없다.


이제는 청년의 눈으로 해외봉사단과 ODA YP 정책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은 청년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미래를 책임질 재원이자 현재의 경험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용기 내어 나와 준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배움과 존중의 문화가 이 분야에 널리 퍼져 해외봉사단과 ODA YP로서의 경험이 청년들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5-31


작성: 이예향 발전대안 피다 간사 / yehyang11@naver.com




[1]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2004년 유로메이데이 행사에서 직업 안정성 없이 저숙련·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는 노동자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본 글에서는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정의를 따라 단순히 고용 형태나 임금 수준 등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 삶의 안정과 불안 등의 측면에서 폭넓게 노동자 집단을 파악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2] 연합뉴스 2018.04.05. ‘KOICA 일자리위원회’ 발족, 올해 5천248명 해외 파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05/0200000000AKR20180405141600371.HTML 에서 2018.05.29. 인출.


[3] KOICA 봉사단 홈페이지 https://kov.koica.go.kr/business/status/dispatch.koica 에서 2018.05.29. 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