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8호] 코로나 시대의 혐오와 차별: 대응과 과제 (홍성수 칼럼)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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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혐오·차별

혐오와 차별이 오늘날 대표적인 사회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은 사회경제적 위기와 함께 더욱 급속하게 확산되곤 한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함께 개인의 지위가 불안해지고, 개인의 이익이나 안전에 더욱 집착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 평소 취약한 지위에 있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던 소수자에게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경제적 위기는 장기불황이나 일자리 부족 등 경제적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 감염병 유행 등의 시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적 위기가 더욱 극적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만큼 혐오와 차별도 빠른 속도로 극단화되는 경우가 많다. 흑사병과 마녀사냥이 아주 전형적인 사례이고, 전쟁 시기에 소수민족이나 소수인종이 희생양이 되었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이나 동일본대지진 때 혐한 분위기가 퍼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 외국인 혐오가 확산되었다는 것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2020년의 팬데믹 역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그것은 현실화되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혐오와 차별이 늘어나고 있다. 외신에서는 연일 혐오와 차별 사례들이 보도 되고 있다. 아시아계 인권 옹호단체인 ‘Stop AAPI Hate’는 지난 1년간 3,795건의 아시안 혐오/차별 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언어적 괴롭힘(68.1%)과 의도적 회피(20.5%), 온라인 괴롭힘(6.8%)뿐만 아니라, 물리적 공격(11.1%)도 보고되었고, 고용차별이나 서비스 거부 등 차별행위도 8.5%를 차지했다. 여성 피해자가 남성 피해자보다 2.3배 많았고, 중국인이 대상이 된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42.2%), 한국인 (14.8%), 베트남인(8.5%), 필리핀인(7.9%) 피해자도 적지 않았다. 혐오와 차별이 발생한 장소로는 사업장, 길거리, 공원, 온라인 등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곳이었다. 혐오표현, 괴롭힘, 차별행위, 혐오범죄 등 혐오/차별이 야기하는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초기에는 중국인, 조선족, 신천지, 대구시민에 대한 혐오가 문제가 되었고, 이후에는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시설에 수용된 노인이나 장애인,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주자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평소에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던 개인이나 집단이 감염병에 노출되었을 때 집중적으로 혐오와 차별의 타겟이 된 것이다.

 

코로나19와 혐오와 차별에 맞선 대응

팬데믹과 함께 혐오와 차별이 확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사실 팬데믹이 혐오를 야기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재빠르게 혐오와 차별을 경고하고 나섰다. <COVID-19와 인권 유엔 사무총장 정책보고서>(2020)에서는 “평등, 비차별, 포용이 이번 위기의 핵심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COVID-19 지침>(2020)에서도 코로나 피해를 막는 정책에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인, 기저질환자, 장애인,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 소수인종,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이주민, 난민, 무국적자, 국내 실향민, 선주민, 시설에 수용된 사람, 수감자, 구금자, 성소수자 등에게 피해가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 그리고 차별이 확산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경고하면서, 개별 소수자 집단에 대한 대책, 혐오표현에 관한 지침, 언론과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라인 등을 발 빠르게 내놓았다. 팬데믹 시기의 혐오와 차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 적시에 대응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국제사회가 아무런 준비 없이 팬데믹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혐오와 차별의 확산이 곳곳에서 감지되었으나, 곳곳에서 이에 대항하는 흐름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혐오 선동에 동참했지만, 혐오와 차별의 확산을 경계하는 언론이 더 많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지도자들도 혐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월 일찌감치, "신종코로나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무기는 공포와 혐오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인, 특히 중국 유학생에 대한 혐오가 심상치 않을 때 혐오와 차별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이 교육부총리, 서울시장, 인천교육감 등 곳곳에서 나왔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혐오와 차별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0년 4월 이태원 집단감염 때 역시 성소수자 혐오가 확산될 조짐이 있었고 외신에서는 “성소수자 혐오가 한국 방역 정책을 새로운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응하여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혐오에 반대하는 한편, 상담을 제공하고 자발적으로 검사받을 것을 독려했다. 방역당국과 서울시, 경기도에서도 이에 화답하여 사생활이 보장되는 안전 검사 방침을 천명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방역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특정 집단, 지역, 세대에 대한 비난과 혐오는 결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태원발 집단감염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조기에 진정될 수 있었다.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혐오에 반대하는 힘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외국인노동자 진단 검사 의무화 방침이 남긴 것

2021년 3월에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 노동자 진단 검사 의무화 방침을 내놓았는데, 복기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 경기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대구시 등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는데,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왔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집단 전체를 ‘강제 검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방역의 관점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불필요한 혐오를 조장할 우려만 가중하는 처사였다. 이에 서울대 인권센터, 서울시 인권위원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단체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고, 결국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자체에 행정명령 철회를 요청하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외국인을 위한 검사 원활화 조치·편의가 거꾸로 차별이나 인권침해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차별이나 인권침해 논란이 없도록 더욱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애초에 이런 조치가 없었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신속하게 철회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등에 인권 자문/감시기구들을 설치해왔고, 시민사회도 인권과 차별에 대항하는 역량을 키워왔다. 신속한 대응은 그 성과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만 하다.

 

전망과 과제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혐오와 차별이 곳곳에서 감지되었지만, 정부와 방역당국, 지방자치단체가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했고, 언론과 시민사회도 성숙하게 대처했다고 할 수 있다. 실망스러운 대목도 있었지만, 우리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고 하겠다. 코로나19는 당분간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고, 앞으로도 소수자나 취약계층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가능성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면 안된다.

2020년 팬데믹은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혐오와 차별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당위에 주로 호소해야 했지만, 코로나19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혐오와 차별이 우리 사회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포용과 연대, 평등의 정신을 확고하게 자리잡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역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대위기가 우리 사회가 더 평등하고 더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진부한 표현을 다시 언급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 2021-04-21(목)


작성: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 sungso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