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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13호] 미투, 우리 안의 ‘모순’을 마주하다

2018-03-30
조회수 2582


미투, 우리 안의 ‘모순’을 마주하다


1908년 3월 5일, 미국 섬유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세계 여성의 날’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2018년 3월,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미투(#Me, too)”라는 또 하나의 혁명이 전 세계와 한국을 뒤흔들었다. 미투는 1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남성과 여성 간 권력의 간극은 여전하고,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1월, 한 여성 검사가 뉴스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한 이후, “나도 고발한다”라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견고한 성별 권력구조와 그로 인한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법조계, 문학계, 문화예술계, 연예계, 종교계, 정치계, 교육계 등에 이르기까지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인권’과 ‘정의’,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앞세우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국제개발협력의 맥락에서 미투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 미투 운동 이미지 ©Steve Isaacs_Twitter



국제개발협력에서 ‘미투’는 왜 중요한가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UN은 1993년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선언(UN Declaration of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을 통해 ‘여성폭력’을 “공적 혹은 사적 생활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혹은 심리적 해악이나 고통을 주거나 줄 수 있는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 행위(GBV: Gender Based Violence),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압 또는 자유의 박탈”로 규정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2015년 전 세계가 새롭게 합의한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에도 중요하게 반영되었다. SDGs 5번 목표는 “성 평등 달성과 모든 여성 및 여아의 역량강화”로 세부목표 2번에서는 ‘인신매매, 성 착취 및 기타 유형의 착취를 포함하여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철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은 이러한 목표에 따라 젠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젠더폭력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2011년 아이티 지진 당시 한 단체의 현장 활동가들이 현지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지난 2월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활동의 가치와 현실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정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그 가치를 수호하고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이 오히려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특히 해외 현장에서의 국제개발협력 활동은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권력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일반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종 ‘갑을 관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위계적인 권력 관계는 기존의 성별 권력과 결합해 젠더폭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일’을 한다고 자위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우리 스스로부터 바꾸어내지 못하면서 타인의 권리를 말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래서 우리는 이번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안의 ‘모순’을 끄집어내고, 또 기꺼이 마주해야 한다.



해외와 국내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성폭력


국제개발협력은 활동의 공간적 범위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성폭력 문제도 단일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다. 해외 현장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특정 국적이나 인종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성폭력의 양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활동 지역이 주로 원거리에 있고 열악한 환경이라 위험성이 더 가중된다.  


먼저 활동 지역이 도심과는 떨어진 외딴곳이거나 함께 활동하는 인원이 소수인 경우가 많아 성폭력이 발생하더라도 드러나기가 더 어렵고, 피해자가 혼자 고립될 확률도 높다. 이번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아프리카 남수단 자원봉사자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같이 생활하던 한 신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 가해자는 취재진이나 방문객 등 외부인들이 떠나고 같이 생활하는 소수의 인원만이 남았을 때 성폭력을 시도했고, 피해자의 잠긴 방문을 뜯는 등 과격한 행위를 일삼았지만 이를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 특히 현장 활동가들은 활동만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를 같이 쓰면서 생활 전반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해외에 계속 머무는 경우가 아니어도 업무 특성상 잦은 출장이 성폭력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한 정부 기관에서 본부 고위급 직원이 사업 점검차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술자리 이후 현지 사무소의 인턴을 성폭행하려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 일단 직책의 차이로 보면 전형적인 위계 관계인 데다 현지 사무소가 본부의 출장 일정을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취약한 위치에 있었고, 가해자는 이러한 상황을 악용한 것이다.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에게 성폭력을 당하거나 위협을 겪는 예도 있다. 지난 3월 16일 개설된 국제개발협력 미투 운동 페이스북 페이지[1] 에 올라온 글 중 일부도 이에 해당했다. 현지인 운전기사와 사업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기사가 가게로 데려가 술을 억지로 권하거나, 사업 관계자인 교장이 차 안에서 손과 허벅지, 어깨 등을 계속 만졌다는 증언이 있었다. 한 피해자는 주변에 문제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답변이 “현지 문화를 체험할 기회였다”, “너무 예민하다”, “그런 마음으로 현장 활동 하냐” 등의 비판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성폭력 이슈가 국제개발협력 맥락에서는 타 문화 또는 파트너에 대한 이해나 현장 활동가의 역량으로 잘못 해석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문화 차이와는 구분되어야 하며, 개인의 태도나 자질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외 현장에서 겪는 성폭력 문제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가까운 사람도 잘 없는 데다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도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결도 더욱 힘들어진다. 그리고 대개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폭로를 망설이게 되는 이유와 유사하게 ‘자신 때문에 활동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잘 꺼내지 못한다. 특히 국제개발협력 현장 활동가들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 혹은 개인적인 목표에 따라 열악하고 힘든 타국에서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과 자기검열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나 하나 입 다물면 평화로운데…” 위의 남수단 사례 생존자가 인터뷰에서 말한 이 한마디가 유독 쓰리게 다가오는 이유다.


해외 현장만이 아니라 국내의 국제개발협력 관련 조직 내부에서도 성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실제 미투운동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한 NGO의 대표가 스터디 이후 술자리에서 춤을 강요하고 손을 계속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또, 아동권리 신장을 위해 일하는 국내 한 단체에서는 고위급 간부가 비서 직원에게 “영어 하는 게 동두천 미군 접대부 같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여러 차례 해 고용노동부의 조사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러한 유형의 성폭력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앞선 해외 사례보다 어쩌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고 쉽게 묵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근본적으로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한 데 따른 결과이다.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지향하는 가치에 비해 그동안 조직 내부의 인권이나 거버넌스, 조직문화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그만큼 개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미투를 계기로 장기적으로는 동료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흔한 미투 대처법: ‘축소’와 ‘은폐’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후에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큰 규모의 조직들은 대체로 내부에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별도 기구를 두고, 해당 사안을 조사하고 징계하는 절차가 있다. 하지만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러한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이 공통으로 드러났다.


아이티에서 발생한 성매매 사례의 경우, 해당 단체는 자체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성매매’ 대신 ‘성적 비위’라는 표현을 사용해 문제를 명확하게 발표하지 않았고, 해당 직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이들이 이후 다른 단체에 재취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조사 기간 해당 직원들이 입막음을 위해 증인 중 한 명을 협박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단체 본부가 있는 영국의 정부와 공공기관은 해당 단체에 대한 지원 중단을 고려 중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7,000명의 후원자들도 후원을 중단했다[2].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앞서 비서 직원을 성희롱해 문제가 된 단체는 당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해당 직원이 이사진에게 재심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문제를 제기했던 팀장을 일방적으로 해고한 반면 조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팀장급 직원 두 명을 국장급으로 승진시켜 논란이 일었다[3]. 이후 고용노동부는 “조사 결과 성희롱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나,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이에 준하는 조처를하지 않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과태료 320만 원을 부과했다.  


아마 조직 입장에서는 해당 사건이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일정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조직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외부나 후원자들의 ‘신뢰’와 직결되고, 조직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한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처방식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공정하게 조사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까지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의 카드섹션 퍼포먼스 ©오마이뉴스


미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아직 듣지 못한,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중첩되는 권력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유형과 층위의 성폭력 문제가 있고, 그중에는 현지인 피해자와 같이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예도 있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들이 모일 수 있도록, 또 모여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공감대와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개인의 성찰과 실천도 중요하다. 사실 이번 미투 운동을 보며 나는,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은 과연 이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다양한 성별, 연령, 직업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이 공간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떤 문제는 없었는지, 꺼내 놓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주변 동료들이 혼자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해 이 생태계에 함께 속한 구성원으로서 반성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상적이지만 거대하고, 구조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한 이 폭력 앞에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2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2018분 동안의 이어 말하기’가 열렸다. 33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193명의 발언자가 자신이 겪은 일상 곳곳에서의 차별과 폭력 경험을 증언하는 자리였다. 우리에게도 이제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구조적인 변화와 개개인의 실천적 움직임이 만나 우리 안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많이 닮아있을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3-30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https://www.facebook.com/idcmetoo/

[2] 옥스팜, 아이티 지진 구호 갔다 성매매한 직원들 은폐(2018.02.12,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121623001&code=970100

[3]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내부 고발' 직원 보복성 해고(2018.03.08, 뉴스타파)

 https://newstapa.org/4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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