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11호] 삶 전체로 전하는 말 -영화 "내 친구 정일우"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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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체로 전하는 말
영화 "내 친구 정일우"


[편집자 주] 영화 내 친구 정일우1973년 미국 예수회 신부로 한국에 온 후 청계천과 상계동에서 철거민 곁을 지키며 빈민운동에 앞장선 故 정일우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종교와 국경을 뛰어넘어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던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피움 11호 굿초이스는 캄보디아 껀달 주의 장애인 직업훈련센터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오창 신부님의 영화 후기를 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라!
그러면 그들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2008년 2월 4일, 캄보디아로 2년간의 실습을 떠나는 저에게 정일우 신부님이 건넨 작별의 인사말입니다. 그 무렵 정일우 신부님은 이미 거동이 불편하셔서 외부 활동은 거의 못 하시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예수회 연학 수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공동체에서 정 신부님의 도우미 소임을 맡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신부님을 모시고 병원을 오가는 길은 제게는 신부님과 둘만의 데이트 시간이었습니다.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 지내는 그 시간 동안 저는 책 속의 이론이나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라, 그것들을 구체적 삶 안에서 살아낸 사람의 말에 담긴 무게와 그 설득력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정일우 신부의 모습(영화 ‘내 친구 정일우’ 스틸컷) ©시네마달


1934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정일우 신부님(미국명, John Vincent Daly)은 1953년 예수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는 1960년 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와서 3년간 실습을 했고, 사제 서품 후 196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서강대에서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말로만 복음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 신부님은 1973년 홀연히 학교를 떠나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평생의 동지가 된 ‘배달학당’ 야학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고 제정구 선생을 만났습니다. 정일우 신부님과 제정구 선생은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집단 이주 마을인 ‘복음자리’를 설립해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는 ‘한독주택’과 ‘목화마을’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서울의 목동, 상계동 등에서 일어난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 빈민운동을 해 나갔으며, 특히 정일우 신부님은 상계동 철거 지역에 직접 들어가 살면서 철거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습니다. 이후 정일우 신부님은 1990년대 말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값싼 노동력 제공과 저가 미곡 정책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농촌으로 눈을 돌려 충북 괴산 삼송리에 농민들을 위한 신앙과 생활공동체인 ‘솔뫼농장’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삶은 우리 시대의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벗으로 살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 철거민들과 정일우 신부 (영화 ‘내 친구 정일우’ 스틸컷) ©시네마달


10년이 지난 지금, 캄보디아 껀달 주에 위치한 장애인 직업훈련센터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에서 100여 명의 캄보디아 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80여 명의 직원 선생님들과 일하고 있는 저에게 이러한 정일우 신부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는 새로운 성찰거리를 던져 줍니다.

먼저, 영화 전반을 통해 정일우 신부님의 삶은 ‘누군가와 함께 머무르는 것’이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청계천 판자촌을 찾아가 “여기서 뭐 하고 지내세요?”라고 묻는 지인들에게 신부님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아이들이랑 같이 놀아요.”라고 대답합니다.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찾아 들어간 판자촌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입니다. 사실 영화 대부분의 장면들은 정 신부님이 주변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함께 신명나게 노는 모습입니다. 정 신부님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저에게도 큰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 장애인 친구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과 함께 머무르는 것보다 늘 앞서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친구들과 충분히 함께 머무르지 않으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라, 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 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매달리게 되는 것을 자주 발견합니다.

▲괴산에서 농민들과 함께하는 정일우 신부(영화 ‘내 친구 정일우’ 스틸컷) ©시네마달


두 번째로, 정일우 신부님 곁에는 늘 훌륭한 동반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는 4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하는데, 모두 정일우 신부님과 각각의 장소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그 공동체에서 신부님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정일우 신부님 당신이 주도권을 갖고 뭔가를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리더로 성장하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스스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왔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키워 내는 것,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이 지속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난 25년간 반티에이 쁘리업 운영에서 늘 최종 책임자는 저와 같은 외국인들이 맡아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현지 직원 선생님들 안에서 충분한 리더십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제 마음에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실패나 상처로 말미암아 주저앉지 않고, 함께 해야 할 사람들 속으로 또다시 걸어 들어가는 담대함을 정일우 신부님에게서 배웁니다. 신부님은 상계동 철거민들도 ‘복음자리’와 같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를 희망했지만, 그러한 신부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몫을 챙겨 뿔뿔이 흩어졌고, 너무나 힘들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싫어 심지어는 함께 했던 정일우 신부님에 대한 인터뷰 요청마저 거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 학생들이나 그들과 동반하는 직원 선생님들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실 평범한 인간들입니다. 모두가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아 아파하고,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는 아주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곤 합니다. 정일우 신부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되, 궁극적인 선택은 자신이 동반하는 사람들 각자에게 내어 맡기는 내적 자유로움을 지니셨기에, 상계동에서의 상처와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구조적인 가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농민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내 친구 정일우”를 보는 동안, 그리고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인생에서 이런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캄보디아로 떠나는 저에게 신부님이 해 주셨던 그 말씀은 바로 당신의 삶 전체로 전하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11-22

작성: 권오창 신부
예수회, 캄보디아 반티에이 쁘리업 센터장/ simonkwon@gmail.com



<참고> 정일우 신부님을 소개하는 닷페이스 영상




<참고> 영화 "내 친구 정일우" 상영정보
- 상영관:  http://ticket.movie.naver.com/Ticket/Reserve.aspx?m_id=M000066682&t_tab=1
- 영화 다운로드: 
http://nstore.naver.com/movie/detail.nhn?productNo=3091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