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6호] 작은 것들을 쌓아 큰 것에 닿을 때까지 - 김현주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인터뷰

2018-09-28
조회수 6951


작은 것들을 쌓아 큰 것에 닿을 때까지 

- 김현주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인터뷰


가을 하늘의 푸르름이 극에 달했던 지난 13일, 올해 3월부터 발전대안 피다의 운영위원으로 함께하고 있는 김현주 운영위원을 찾아갔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사회과학분야 도서 MD와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스쿨미유닛 등을 거쳐 현재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세상이 아동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꿈꾸며,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앱을 만드는 기업 에누마의 사업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다.



개별 ‘사업’ 이야기를 넘어 국제개발협력을 이야기하고자 피다의 문을 두드리다

Q.올해부터 피다의 운영위원으로 함께 해주고 계신데요. 피움 독자분들에게 간략한 자기 소개와 함께 어떻게 피다에서 활동하게 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안녕하세요. 에누마 사업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김현주입니다. 제가 피다 운영위원을 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들은 건 에누마로 이직을 할 무렵이었어요. 제안을 받고 처음 했던 생각은 매우 단순해요. 같이 밥 먹고 놀자고 불러 주는 사람이 없으니 피다에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저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초반에는 정책 애드보커시 일을 했고 이후에는 아프리카 지역 교육사업을 했어요. 일하면서는 프로젝트 단위의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국제개발에 대한 논의는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개별 프로젝트 운영을 넘어서 글로벌, 지역과 국가, 마을 단위의 빈곤론과 발전론을 이야기하는 데 목말라있었고요. 그런 이야기를 한국에서 어디가서 누구와 나눌 수 있냐 하면, 그건 피다니까, 운영위원 제안을 받았을때 결정이 쉬웠습니다.


알고 보니까 운영위원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지만(웃음). 피다 회원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처음 ODA Watch에 왔을 무렵의 관심은 ‘우리는 다른 나라의 빈곤에 왜 관심이 있지?’,  ‘다른 나라의 빈곤을 어떻게 봐야 하지?’,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는 우리가 지금 모습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뭘까?’ 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발전론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협소한 한국에서  피다는 이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의미있었습니다.



‘빈곤’ 을 기록하던 블로거에서 국제개발협력판에 뛰어들기까지.

Q.어떤 계기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뛰어들게 되셨나요?

A.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지만 그 시기에 국제개발협력은 거의 접하지 못했어요. 정책을 만드는 국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을 해주는데,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그려주지 않는 학문이라서 재밌으면서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알라딘에서  인문사회과학 도서 MD를 했어요. 그시기에 나왔던 사회과학 책이나 인문학 책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서 5년 정도 일했고, 그 때가 2000년대 초반이라서 새천년개발목표, 밀레니얼 세대들이 바라보는 글로벌 빈곤 이런 이슈들이 한국 사회 안으로 막 들어오던 풍경도 볼 수 있었어요. 글로벌 빈곤 문제를 다룬 책들을 처음에는 재미로 읽다가 글로벌 빈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해결책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고 논쟁적이라는 걸 알고 혼란을 느꼈어요. 기업방식으로 풀지, 역사적으로 바라볼지에 따라 경로가 달라지고, 각각에는 다양한 이해지단의 자기주장이 있고요.


마치 수많은 캐릭터 열전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글로벌 빈곤이 생긴 구조적 원인이 따로 있는데 기업 활동이 많아지거나 원조를 더 늘리거나 줄이면 이 문제가 풀린다는 것은 너무 순진하게 보는 거 아냐?’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고요. 이걸 책으로 읽는 걸 넘어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당시 ODA Watch에서 하던 강의를 찾아 듣고, 계속 혼란스러울 거면 이런 것들을 붙잡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빈곤과 불평등(Poverty and Ineqaulity)전공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유학을 결심했을 때 이미 30대에 접어들었고 결혼을 한 상태였고, 택한 전공도 직접적으로 개발협력사업 매니지먼트를 익히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도 국제개발협력 업계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질문이 있으니 답을 찾아보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고 갔습니다. 돌아보면, 그럴 수 있는 시간을 30대 초반에 가졌던 게 너무 좋아요. 호기심을 품고 공부했고, 그때의 고민과 질문들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어요. 그 블로그가 계기가 되어 세이브더칠드런에 입사했습니다. 경력 설계를 계획 있게 했다거나 철저한 단계 단계 준비를 거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다행히도 품었던 질문을 쫓는 과정이 직업으로도 이어진 것 같아요.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저한테는 질문이 중요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궁금함이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해요. “왜요”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Q.지금 현재 에누마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에누마는 모든 아이들이 최선의 학습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 도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쳐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킷킷스쿨이라는 개도국 아이들의 기초, 언어, 수리, 학습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든 앱을 아프리카 지역에 소개하고 확산하는 것이고요. 글로벌러닝 엑스프라이즈 (Global Learning XPRIZE) 대회에 도전하면서 킷킷스쿨이라는 앱을 개발했는데요. 이 대회는 이제껏 시도한 ICT, 디지털 기기 기반의 교육 프로그램들이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하드웨어에 자체에 너무 치중한 반면,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는 좋은 컨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해요. 좋은 학습 컨텐츠가 갖춰진다면 디지털 방식을 통해 개도국 아이들의 배움과 학습에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으로 상금 112억원을 걸고 대회를 개최했고요. 저는 이 대회에 도전하여 만든 킷킷스쿨이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잘 쓰이는 도구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킷킷스쿨이라는 작품을 아이들 손에 쥐어 주는 역할, 사업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요. 교육에서 소외되거나 제 수준에 맞는 흥미로운 교육 콘텐츠를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통은 엄연한데 그것에 대해 무덤덤해진 사람들에게 "이 방법으로 한 번 해보는 건 어때요?" 라고 계속 말을 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트너는 정부, NGO, 다른 기업, 지역의 학교일 수도 있고 또 아이가 자라는 가정일 수도 있고요.



Q.말씀하신 내용은 전통적인 교육개발협력과는 다른 시도인 것 같은데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현장의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제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해외사업을 운영하던 시절에 디지털 혁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기본도 안되어 있는 곳에 디지털? 충전은 어떻게 하라고? 그 비용이면…’ 하고 생각하는 식으로 한계를 먼저 생각했을 것도 같아요. 개발협력사업을 잘 한다는 건 위험요소를 잘 관리해서 사업 기획 당시에 세워둔 목표를 사업의 틀 안에서 적절한 지표를 갖고 달성하면 사업이 잘 된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틀 안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걸 좀 안하고 싶다거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방어적이기 쉽거든요. 하지만 누군가는 이 틀에서 계속 벗어나려고 해야 개발협력이 질적으로 더 나아지고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저는 기존의 프로젝트 문법들을 넘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아이들의 고통에 무덤덤한 개도국 정부의 교육 행정가들, ‘그치만 결국은 잘 안 될 거야’, ‘학교를 지어 봐야 선생님이 없는데 어쩌려고’, ‘산적한 과제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변화란 게 가능하겠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흔들고 싶고, 내가 충분히 다 흔들거나 바꾸지 못해도 ‘어 되겠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을 경험하도록 하고 싶어요. 킷킷스쿨은 그런 도구이기도 합니다.


킷킷이 정말 마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충전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로컬 기업이 있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게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이런 방식의 변화가 의미가 있을 거예요. 같이 해볼래요?”라고 제안하는 정도인 것 같고 그 중 좋은 방법을 찾아서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할 수 있겠죠. 누구는 지치고 누구는 방관하는 현재 상태에 균열을 내는 장면들을 기대해요. 이런 장면들이 한 지역사회에서 만들어 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는 매우 소중하고, 그런 경험은 일단 한번 경험하고 나면 새겨지고 자라나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디지털은 어렵고 거대한 문제를 새롭게 풀어 볼 수 있다는 제안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도구이자 언어인 것 같아요.



Q.오랜 기간 국제개발협력 일을 하시면서 부딪치는 한계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A.한국 사람이 개도국에서 개발협력 일을 할 때 사실은 기본적으로 만족감이나 효능감을 느끼기 매우 어렵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거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으쓱할 수 있는 일이 잘 안 일어나는 게 당연한 일이에요. 원거리를 두고 일해서 일의 과정은 지치고 느린 반면 일의 결과로 효능감, 효용감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과정에서 보람을 찾아야 하고요. 사업을 어렵게 세팅하고 시작했더니 우기가 찾아오고, 우기 끝나기를 기다렸더니 학교가 무너지고 교실 지어놓으면 에볼라 발병하고 이런 것들을 겪는데 기본적으로 일을 잘 해내기가 어렵죠. 얼마 전 어떤 선배님이 ‘많은 사업을 한다고 한국에서는 자랑스럽게 떠들어대지만 집에 가는 순간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다시 그 동네를 찾아가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 하나는 했지’ 라고 생각되는 것을 한 두개라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속으로 엄청 공감했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가 잘 했지, 내가 기뻤어’ 와 같은 나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지인이 만족하면 좋고 그게 정책으로 반영이 되거나 지속적으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면 내가 좋은 흐름 속에 있었던 구성원이 되는 것이고요. 저는 지금 일을 오래 하고 싶고요, 그래서 일의 결과로서만이 아니라 과정으로 내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현지 분들을 만날 때 더 명랑한 상태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좋은 흐름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저부터 좋은 기운을 품은 사람이어야 하듯이요.



뭉쳐 있는 개개인의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이름을 붙여준다면.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 제 3회 젠더편’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 ⓒ 발전대안 피다



Q.첫 질문에서 회사에서 다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고자 피다에 오셨다고 했는데, 7월 24일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3회차 젠더편’을 준비하고 진행하시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일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젠더 지형, 개발협력 사업에서의 젠더를 논의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지금은 뭉뚱그려져 있는 경험과 논의에 제 말을 찾아주려면요. 모여서 그 이야기를 해봤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 같고요. 행사에서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이 개발협력사업 내에서 젠더 주류화에 대한 방법론이기보다는 이 섹터에서 활동가인 우리들은 어떻게 일할 것이냐, 지금의 젠더 지형이 어떠냐, 우리의 일터를 이루는 사람들은 젠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였잖아요. 그 이야기는 제 또래의 동료들과 점심 시간마다 어떤 날은 푸념, 어떤 날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힘에 부치고 괴롭다는 하소연이나 호소, 자포자기에 가까운 자조와 낙담의 형태일때가 많아요. 적절한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문제를 명확하게 보려면 언어적 틀이 중요한데요. 사회적 대화를 거쳐서 적정한 언어를 만들지 않으면 개인을 탓하게 되고 사회구조는 뒤로 숨잖아요.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시리즈는 일의 현장에서 우리가 겪는 상황들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자, 그 논의들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가져다 놓자, 라는 취지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피다가 이런 역할을 더 했으면 좋겠어요. 적절한 언어와 사고의 틀로 논의의 장을 펼치지 않으면 다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려요. 빈곤론과 발전론도 그렇죠.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잖아요. 피다를 통해서 우리가 일하는 환경 안에서의 문제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여 주고, 인식 틀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끌어내는 작업들은 젠더 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로도 확장되기를 바라요. 젠더 편에서 대화 나누면서 '우리들 개인이 각개전투를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규모가 작고 고용이 불안정할 수록요.


외국의 동료들을 봐도 전문가도 대게 컨설던트, 혹은 계약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커리어는 시작부터 끝까지 결국 자기가 헤쳐가야 하는 게 기본적으로 많거든요. 각개전투하면 못 살아남아요. 젠더 편을 통해서 혼자 짊어지고 있었던 것을 꺼내어 나눈 것,  모인 사람들이 그것을 공동의 경험으로 공유했다는 것이 좋았어요.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나눠준 분들께 다시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대화의 물꼬를 틔어주셔서요.



Q.현주 위원님의 제안으로, 각국의 다양한 위치와 상황에서 일하는 분들께 짧은 영상을 부탁 드리고, 행사 때 같이 나눴었는데요. 처음 섭외하실 때 그분들의 반응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A.기꺼이 해주셨어요.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답이 없는 이야기를 푸념하는 것처럼 문제만 던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도 하셨는데, 그렇더라도 제대로 된 언어로 문제가 설명되는 것 자체가 주는 힘과 즐거움이 있어요. 이런 자리에 기꺼이 참석할 수 있는 만큼 이 쪽의 사람들은 열려 있고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바빠 죽겠는데 그 이야기를 하냐고 하는 분은 없었어요. 오히려 같이 이야기 하자고 초대하는 것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피다가 그런 장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좋은 개발협력을 하는 지식은 학문적인 권위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경험이 폄하되지 않게 공유되는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개전투가 아닌, 함께 뛰는 운동장이 되길 바라며.


Q.성평등한 국제개발협력 생태계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성평등한 국제개발협력 일터가 되려면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왜 개발협력을 하고, 이런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활동들로 풀어 보고 싶어 한다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이 남성/여성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과 직위를 맡고 있다고 구분하고 집단화 하려는 경향을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평등하다는 게 기본적으로는 개인으로서 존중이 되어야 하고 모여서 협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면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사람을 줄 세우지 않아야 해요. 성평등에 대해서는 글쎄요, 저는 일단은 힘들어도 버텨서 살아남자 라는 생각이 들고, 올라가실 분들 빨리 사다리로 올라가시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 또래들이 많이 살아 남아서 좋은 포지션에 가서 변화를 빨리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들이 있고요. 명예남성으로 해결하지 말고 중간에 다른 여성분들의 힘, 연대가 필요하면 다 받아가면서 어쨌든 포기하지 말고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일을 열심히 하고 직장에서 성공할 때, 조직과 다른 여성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클 것 같아요. 열심히 싸우면서 싸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잘 싸운 사람들이 주변에 좋은 팁을 많이 주고 그런 선배가 상사가 되었을 때 열어줄 수 있는 공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A.우리가 일하는 곳에는 힘의 불균형이 많아요. 그리고 아주 작은 조직일수록 힘을 행사 하기 더 쉽고요. 우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 힘의 흐름, 강자와 약자 등 우리가 배운 직업적 용어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가 한 모든 훈련은 그런 것에 대한 것이잖아요. 개발학을 공부하거나 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힘의 불균형을 보도록 훈련 받은 사람들이고, 국가에서 보던, 글로벌에서 보던, 마을에서 보던,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보던 그걸 보라고 돈 주고 배운 사람들이잖아요.


예를 들어 20대 때 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 언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장기 봉사도 다녀오고 대학원도 가고, 유학도 갔다 와서 ODA YP 인턴으로 일하고 현장 2년 파견 가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결혼하고 한국의 작은 NGO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고요. 그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온 사람이 육아나 출산 등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도대체 이 분야에선 날 도와주는 환경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그 앞의 10년을 다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현실적으로 우리같이 너무 축적된 것도 없는 섹터에서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쌓은 10년 20년을 까먹는다면 너무 손해 보는 일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마주했을 장벽이 너무 또 속상하고요. 그렇게 해서 떠나간 제 동료들이 실제로 있고 그 동료들이 없어서 힘든 건 저였으니 이건 정말 현실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1군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뛰고 또 뛰어서, 작은 것들을 쌓아서 큰 것에 닿는 모습들이 반갑고, 또 그런 모습들을 앞으로도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런 선수들을 받쳐주는 서포팅 시스템이 곳곳에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피다부터요.


2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일지라도 연대하고, 서로 힘을 보태며 버티고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계속 맴돌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매 순간 마주하는 장벽을 허물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그녀의 삶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홀로 열심히 버티고 있을 2, 3군들에게 한 줄기 위로로 스며들기를 바래본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9-28


인터뷰 및 정리: 이예향 발전대안 피다 간사/ yehyang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