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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뷰아프가니스탄 연대기와 한국 사회의 세계시민성에 대한 소고

2021-09-30




아프가니스탄 연대기와 

한국 사회의 세계시민성에 대한 소고



2007년 7월, ‘단기 봉사’를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국했던 한국의 개신교인 23명이 탈레반에 의해 피랍되었다. 우리 정부, 아프간 정부, 탈레반 사이의 막전막후 외교전 끝에 ‘아프간 내 개신교 선교단 파견 중지’ 등을 골자로 한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되었으나, 끝내 인질 2명이 목숨을 잃으며 ‘아프간 한국인 피랍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동 사건은 당시 한국의 외교 역량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동시에, 개발도상국에서 시혜적으로 이루어지던 종교 단체의 ‘봉사’ 활동에 대한 뜨거운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국가라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미지를 전 국민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21년 8월, 이번에는 390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의 폭정을 피해 한국으로 이송됐다. 이른바 ‘미라클 작전의 성공’이다. 난민 수용에 대한 국내 여론과 국민 정서를 의식한 우리 정부는 구출된 아프간인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하여 제도적 지원에 나섰다. 국내 체류 자격을 인정하는 절차가 면제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실 ‘특별기여자’와 난민은 동일한 법적 권한을 가진다. 여하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통상적인 난민”과의 차이를 강조했기 때문인지[1], 이송된 아프간인들의 국내 체류에 대한 여론은 과거 다른 난민 사례들과 달리 매우 호의적인 편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들 ‘특별기여자’들이 머물고 있는 충북 진천 지역 주민들의 환영 분위기와 함께, 한국 정부와 국민의 배려에 감사하는 아프간인들의 인터뷰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미라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우리 군과 외교관들에 대한 뒷이야기도 속속 들려온다. 14년 전 비극적인 뉴스로 점철되었던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외교, 국방, 경제 부문에서 우리나라의 발전된 국력을 확인시켜 주며 우리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례를 전후로 보여지는 우리의 대외적인 ‘발전’ 기간 동안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프간 한국인 피랍 사건’이 발생한 200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 바깥에 선진국만 존재한다고 여기던 우리의 세계관이 “지도 밖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KOICA와 개발NGO 등을 통한 청년들의 개도국 봉사가 큰 폭으로 늘어났으며, 이어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개도국의 빈곤 퇴치를 위해 국제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개발협력 분야는 한국인의 개도국 진출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요구는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해외 무대에서 성공한 스포츠 스타들, 척박한 개도국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낸 구호 활동가와 같은 시대적 역할모델의 이미지와 조응하며 ‘세계시민’이라는 윤리적 주체를 이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대형 개발NGO들을 중심으로 ‘세계시민교육’이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한국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세계시민교육은 주로 ‘우리 밖의 세계’를 인식론적 지평으로 삼아왔다.


한편 한국 정부는 개발협력 분야의 흐름과는 별개로 세계시민교육을 글로벌 교육의 새로운 의제로 제시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2015년 인천에서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개최한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은 정부의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결국 세계시민교육은 행사의 결과 문서인 ‘인천 선언문’에서 세부 목표 중 하나로 채택되었고, 이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4번째 교육 목표에 포함되기에 이른다. 글로벌 발전 목표로 격상된 세계시민교육을 공교육 차원에서 이행하기 위해 정부는 교사를 연수하고 교재를 개발하며 각 급 학교 단위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세계시민교육의 주창자임을 자임해 왔다.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이 강조해 온 세계시민이란 무엇일까?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시민성이란 “더욱 광범위한 공동체와 공동의 인류애에 대한 소속감”과 “지역, 국가, 세계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호의존성과 상호연결성”에 대한 감수성을 의미한다. 이는 지구 상의 모두가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이라는 보편적 인본주의를 토대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시민성은 편협한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인식의 확장과, 때로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의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역량 접근(capability approach)으로 잘 알려진 누스바움(Nussbaum)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시민성의 발현을 위해 ‘서사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공감’을 세계시민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 바 있다. 역량 접근의 또다른 주창자인 센(Sen) 역시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에서 “나머지 인류의 눈”으로 우리를 성찰할 수 있는 열린 공평성(open impartiality)을 통해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발전대안 피다가 그동안 견지해 온 보편주의적 발전관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국익’에 대한 기여 여부를 선별의 명분으로 삼았던 정부의 아프간 ‘특별기여자’ 선정 과정이나, 이들의 비극을 배경 삼아 우리의 물적⋅도덕적 우위를 확인하는 주요 언론들의 여전한 보도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시간 동안 정부와 개발협력 시민사회가 바깥 세계를 향해 ‘세계시민교육’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줄기차게 암송해 왔음에도, 정작 한국 사회 안으로 들어온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시민성에는 무척이나 더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유력 대선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은 과도한 자의식에 경도된 한국 사회의 타자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선정, 이송, 정착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과거에 비해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나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한국 사회에 재차 던지고 있다. 결국 우리의 ‘국익’은 보편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의 이익에 기여하지 못한 “통상적인 난민”은 우리와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나아가 난민을 비롯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 다른 성적 지향이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 북한을 이탈한 사람들과 같이 다양화되고 있는 ‘우리 안의 세계’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시민’이라는 울타리 안에 더욱 다양한 존재들이 포용되는 사회가 발전된 사회라고 믿는다. 여성이 그러했고 노예가 그러했으며 아동이 그러했듯이,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낯선 사람들도 시민의 울타리 안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아울러 어렵사리 성원권을 부여받았으나 일상에서의 차별로 이를 온당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중에 온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 역시 이들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의 책무일 것이다.


[1] 박범계 “아프간 특별기여자, 통상적 난민으로 보기 어려워” KBS 뉴스. 2021년 8월 27일. (링크)



글쓴이: 정용시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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