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1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당당하고 의연하게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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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당당하고 의연하게"


▲ 방패를 들고 당당하게 맞서는 여자아이.  2019.08. 몽골 울란바타르.  ©하동훈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어머니는 식당을 하셨다. 십여 년 넘게 식당을 하시며 우리에겐 명절이 없었다. 처음엔 정기휴일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마저도 없이 일 년 내내 일을 하셨다. 몸살이 나서 약을 지어 드시고도 가게 문을 여시며 ‘나는 엄마니까 괜찮아’라는 말씀을 하실 때가 많았다. 정작 자기 몸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슬쩍 웃음 지어 보이시며, 우리들이 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으라며 당신 자신은 늘 뒷전으로 두며 하시던 말이다. 


몽골에서 며칠 보내면서 몇 명의 어머니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육아의 부담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어머니.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고파서 센터에서 봉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어머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결혼 후엔 집에만 있다가, 창업 컨설팅을 받고 옷 만드는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는 어머니.

몽골에서 자라는 식물로 건강보조식품을 만들어 한국까지 수출하게 되었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어느 나라에서나 강한 존재인 듯하다.


그런데 몽골에서 내가 만난 어머니들은 조금 다른 면이 있는 듯했다. 아이를 기르고 가사를 챙기느라 많은 힘을 쏟으면서도, 자신을 남편이나 자식의 뒤로 숨기거나 내리지 않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머니 또는 여성으로 그들의 역할을 국한 시키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더욱 더 당당해지기 위해 끈질기게 방법을 찾고 노력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과 경험담에 ‘참 멋지다’라는 고백이 나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울란바토르 시내, 맨션 아파트들 사이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놀이터.

칼과 방패를 휘두르며 한참 장난을 치던 남자아이들과 나 사이로 조금 다른 기운의 여자아이가 뛰어들어왔다. 남자아이들은 슬그머니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고, 여자아이는 버려진 방패를 집어 들더니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 우뚝 섰다. 나의 카메라에서 몇 번의 셔터 소리가 났는데, 다 막아낼 수 있다는 듯이 의연하게 서 있었다.


여자아이의 저 당당함은 그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보고 배우며 자연스레 몸에 배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또 저 아이가 자라면 여느 어머니처럼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는 여성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맞서는 것, 그 자체만으로 멋지고, 대단한 일이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09-18


사진&글 :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 gongam_i@naver.com